좋은 일도 남이 시키면 하기 싫다.

by 세라비

00월 00일 0요일, 날씨 : 맑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다. 기분이 어땠다.

내일 학교 가면 어떻게 해야지. 아무튼 보람찬 하루였다.


전형적인 초등학생 일기이다. 이런 내용은 거의 높은 확률로 숙제로서의 일기일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초등학교 때 일기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이 많았다. 방학숙제에도 일기 쓰기가 포함이 되어 있었고(그런 일기는 항상 개학 1~3일 전에 채워지곤 했다). 어떤 선생님은 심지어 분량까지 정해주고서는 2페이지 꽉 채워서 오라고 해서 강제로 글쓰기 훈련을 한 경험도 있다.

중학교 선생님들까지 일기를 써 오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이런 강제 일기에서는 해방이 된다. 중학교 진학과 함께 공부의 압박은 훨씬 거세지지만 적어도 일기는 억지로 더 안 써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강제성이 사라지면 대부분은 그 행위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정확한 통계는 찾아보지 못했지만, 거의 열에 아홉은 평생치 일기를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완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기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만 해도 고3 때까지 일기를 전혀 쓰지 않았다. 고3이라는 중압감 속에 뭐라도 내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어설프게 기록한 것이 다시 일기가 되었고, 다행히 그 습관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실 이 일기 공포증은 일기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일기 쓰기를 강제로 시킨 선생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근본적으로는 뭐든지 억지로 주입시키려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일기 쓰기가 좋은 습관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글쓰기 훈련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그래서 그 좋은 습관을 기르게 하려고 선생님들이 일기 쓰기를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옳지 않았다. 아무리 바람직한 행위라고 해도 강제로 하게 하면 반감이 생긴다.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하는 것과 반대되면서도 일맥상통하는 원리이다. (더구나 요즘 세상에서 개인정보가 넘쳐흐를 수밖에 없는(?) 일기를 타인이 검사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교육자도 아니고, 교육학을 배우지도 않았다. 따라서 강제로 시키기가 아니라면 정말로 효과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있을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도 하나는 있다. 예를 들어, 일기를 쓰지 않으면 벌을 주기보다는, 일기를 쓰면 상을 주는 방법도 있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그 질은 차치하고라도, 인터넷 검색만 해도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일기뿐 아니라 많은 좋은 습관들이 그렇다. 청개구리 심보. 하라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심보를 가지고 있다.

타의에 지배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실행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결국에는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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