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복(福)과 악업(惡業)의 관계"라는 질문 1이 너무 길어 보시기에 불편하리라 생각해 그 뒷부분을 잘라 적은 것입니다. "복(福)과 악업(惡業)의 관계 1" 를 읽어보신 뒤에 읽으시면 이해하시기 더 쉬우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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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작성자 [의견] 1
감사합니다.
그러면 종교에서 주장하는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하지 말라.' 는 것은 단지 현실세계의 원활한 흐름을 강조하기 위함일 뿐인가요.
둘째로 저는 선악과 화복을 단편적으로 연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기초로 보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관적인 상상이지만 과학에서도 하나의 가설을 정하고 탐구하는 것처럼 불교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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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에 대한 답변]
처음의 질문에 비해 상당히 고차원적인 질문을, 더구나 정연한 논리로 덧붙이시는데, 한두 마디로는 도저히 답변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명제 하나의 질문만으로도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 아니 인류 전체로 보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극히 소략한 견해를 적어보겠습니다.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하지 말라.”
곧 권선징악적인 주장의 목적이 실용적인데 있는가, 아닌가를 묻는 말씀인데,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 말이 단순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하는 원천은 매우 고차원적인 의식 수준에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고차원적인 의식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범상한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사회질서 정화 차원이라든가 현세의 실용적인 이익을 위한 방편으로 삼을 수가 있겠지요.
[위인들의 언설은 고차원적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종도(宗徒), 아류자, 추종자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못합니다. 저차원의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위인들의 고차원적인 뜻을 자기들의 [의식 체류] 수준에 맞게 해석할 수밖에 없지요.
그것은 예수든, 석가든, 공자든, 마르크스든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종도들인 기독교계의 지도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진정한 교훈을 알거나 지키는 사람들이 정말 얼마나 될까요?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을 자기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이를 논증하여 판단한다는 그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므로 서로 자신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주장해도 이를 반박할 수 없으므로 진위를 가려낼 수 없지요.]
간략히 말하면 권선징악 자체는 사회적인 방편이 아니라 인간성의 근원의 하나인 이성[理性 ―지성이 아님]에 의해 제시되는 도덕적인 태도에서 연유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범속한 인간들이 이를 순수한 도덕성에 의해 권하지 않고 권선징악의 결과에 따르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사회질서 유지의 효과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거나 그 의미를 오해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인과관계는 모든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형식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현상이나 사실, 사물, 결과 등 모든 인식을 함에 있어서 인과관계를 도외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실]에 관해 언급할 때 그 내용 여하에 불구하고 선험적으로 인과관계를 불가결한 요소로 봅니다. 만약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모르면 이를 상상으로 채워서라도 일단 형식적인 완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이 이 세상의 여러 불가사의한 현상들에 대해 신화와 전설로 설명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입니다.
지금 이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데 모근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근본적인 원리는 아는데 그 원인은 알 수 없으니 사실의 인과관계 관계를 정확히 추리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옛 사람들은 그럴듯한 상상으로 가상의 원인을 채워넣는 것이지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유하거나 인식을 계속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왜 하늘에서 “우레가 떨어지는가?”에 관한 사항에 대해 옛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었지만 우레가 떨어질 때에 그 원인이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그것이 이미 가정이 아니라 인식의 필연적인 요소임을 선천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 원인을 상상[추측, 추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神; 예컨대 제우스 대신이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번개를 이용)이라든가, 인간의 죄악에 대해 응징으로 천(天: 하느님)이 응징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일단 형식을 맞추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 과학에 의해 그 원인의 추리가 잘못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당시 사람들로서는 위의 신이나 천으로 해석한 원인이 그럴 듯하다고 여겨 이를 믿어온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에 관한 인과관계[사실판단상의 인과관계]는 물리계[물질계]에만 적용되는 것인데 이를 형이상학적인 대상[이는 이념계에 속합니다]에도 적용하여, 신이 이 세상을 지었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이 “그러면 그 신은 누가 지었는가?” 라는 질문을 해서 이를 반박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삼생윤회나 업보에 따르는 저승의 복락도 이러한 인과관계의 추리를 연장하여 적용하는 것이어서 형식상으로 당연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용상으로 논증이나 검증할 증거는?
대단히 불충분하다고 느껴집니다.
불교적 형이상학이 창조해 내는 정말로 엄청난 결과물들이 주관적 상상이 만들어낸 사상누각이 아니고 객관적인 관념이라면 이를 논증하거나 검증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지요.
인식과 사유의 필연적인 요소인 인과관계의 형식상 적용과, 그 적용 대상에 관한 실질적 내용의 존재 여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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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복(福)과 악업(惡業)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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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작성자 [의견] 2
이렇게 자세하게 답변해 주실 줄은 몰랐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씀하신 것이 철학 쪽으로 접근하신건가요?
접근하신 방식으로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과학적 검증이 없다면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인간의 순수마음, 선악의 의지 그 자체만이 있는 것이고 종교의 모든 가르침이나 원칙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 실용적인 이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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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3]
사실 관계를 경험에 의해 증명해 내는 것이 검증입니다.
나는 검증과 논증을 구별하는데 논증이란 명제의 타당성을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 정합적으로 논해 증명해 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검증이 없다고 모두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나로서는 불교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고등 종교는 이성의 체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 그 종교들의 교리들이 대개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근거에 의한 관념이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상상의 산물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수천억겁을 생각하는 불교의 시간관념, 육방세계의 수만은 보살들의 개념 정립 등을 비롯해서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과 연옥 등의 세계상이 보편성과 객관적이 있는가를 의심합니다.
인간의 사유는 과학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칸트가 경계했듯이 직관 없는 빈 개념들이 넘쳐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입니다. 종교라도 사실 판단에 관해 연구하여 얻은 과학적 결과 ―그 결과가 타당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무시해선 안되지요. 종교는 과학을 존중하되 과학을 뛰어 넘어서 관조해야 합니다.
나는 형이상학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공개적인 관념주의자로서 물질 이상의 실재인 [뜻]을 엄연한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이나 원칙들은 그 뜻의 활동에 관한 것이고 그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결코 인간이 주관적으로 창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개진할 수 없을 듯 하니, 시간이 있으시면 내 블로그에 오셔서 의견도 남겨주시고 내가 적은 글들에 관한 비평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