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1
나는 7살 때 바둑을 배웠다. 아버님 무릎에 앉아 형님에게 9점을 놓고 가르쳐 주시는대로 두어서 이기고 바둑의 기초 이치를 터득(?)앴으나 당시 시골에는 바둑판 자체가 드물어서 바둑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대국하기가 무척 어려워 더 이상 늘지 않은 채 20여 세가 넘었다.
더구나 나는 바둑을 도(道)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락으로 여겨 책을 사서 읽어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니 급수가 거의 올라 기지 않는 만년 하수다. 그나마도 얼마 전에 하찮지만 조금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그 때문인지 확실치 않지만 바둑 실력이 2~3급이나 떨어졌다. 그래서 스스로 “동네 골목 바둑”이라고 부른다.
한 번은 기원에서 젊은이를 만나 바둑을 두게 되었다. 몇 급이냐고 물으니 7급이라고 해서 5점을 붙이라고 하고 두어보니 나에게 펑펑 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몇 판 더 두고 “앞으로는 9급으로 두라.”고 하고 끝냈는데 그 뒤에 다른 사람들하고 두는 것을 보니 거의 80%로 이기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렇게 센데 왜 나한테는 추풍낙엽처럼 졌을까 궁금해서 관전을 하면서 분석해 보았다.
옆에서 보니 제법 강자였는데 기풍이 지나치게 강한 공격적 스타일인데다 아주 낙관파여서 위기에 빠져 죽어가는 데도 자기의 약점은 눈치를 채지 못한 체 남의 약점만 보고 잡으러 덤비는 것이었다.
그런 기풍으로 상수(?)인 나에게 덤비다가 진 것이지 하수나 동수들은 그 공격적인 기풍에 다들 견디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9급이 아니라 6급으로 두어도 별로 밀리지 않는 실력이었다.
그는 성격이 무척 낙관적이었다. 바둑을 두다가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 아이쿠 이거 다 죽나 보네!“ ”어머머, 야단났네.“ 하는 둥 엄청나게 엄쌀을 부렸지만 자기가 진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바둑은 세지 않은데 엄살은 9단이네. 앞으로는 이름 대신 엄살 9단으로 부르세,” 하고 말했더니 그 별명이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 9단으로 불러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 좋아했다.
엄살 9단은 재치가 있고 머리가 아주 비상해 보였다. 여러 가지 재주가 있는데 드럼은 프로에 가깝게 잘 친다고 하며 공사 현장에서 조적[벽돌 쌓기] 기술자로 일하는데 쌓는 요령이 있어 남보다 1.5배 이상의 속도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해 번 돈을 자기가 고안한 발명품 특허를 낸다고 다 써버려 생활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었다.
그래도 만사를 낙관해 당장이라도 특허를 받아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격도 선량해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곤경에 대해 불만도 없이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