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에게 버려져 눈속에 누어있는 갓난아기를 구한 충견
평안북도 정주의 어느 산간마을에 사는 이 씨는 40이 넘도록 소생이 없어 첩을 들이고 본처를 멀리했다. 그러자 본처는 오직 “자식 못 만드는 것을 일생의 죄로 뼈저리게 느끼며 밤낮으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더니” 천만뜻밖에도 잉태해 옥동자를 낳았다. 이에 남편의 마음도 돌아섰다. 다시 본처에게 따뜻한 정을 쏟았고 아기를 끔찍이 사랑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첩은 시기심과 분노에 치를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꼴”이 됐고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는 ‘맘 끝’은 결국 ‘태어나선 안 되었을’ 아기에게로 향해 갔다.
어느 날 본처가 동네 한 잔칫집 일을 봐주기 위해 한나절 집을 비운 사이에 첩은 이 기회를 놓칠 세라 갓 태어나 아직 피도 안 마른 아기를 포대기에 둘둘 싸안고 나가서는 그대로 뒷산 눈 속에 버리고 왔다.
끔찍한 일이 생겼으리라곤 꿈에도 생각못한 본처는 “잔칫집 일을 보던 중 불어튼 젖을 만지며 빨리 아기에게 물리겠다며”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안방에 재워 놓고 간 아기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방마다, 심지어는 헛간에 뒷간까지 찾아도 아기는 없었다. 하나 더 이상한 일은 4년째 기르는 개도 보이지 않고 아기를 찾느라 가족들이 난리를 치는데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거였다.
산골 마을이니 밤은 빨리 찾아오는 법.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없어진 아기가 나타나진 않고 사람들은 속절없이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부터 정신없이 아기 찾아 집안과 동네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본처 곁에 “갑자기 강아지가 나타나 컹컹 짖으며 치마폭을 물고 끌기도 하고” 난리를 치지 않는가.
경황이 없는 본처는 귀찮은 나머지 발로 차기도 했는데 그래도 개는 치마를 잡아끌다, 컹컹 짖다, 뒷산 쪽으로 마구 내달렸다 오기도 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 그제서야 동네 사람들은 “저 개,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걸세. 아니고서야 저렇게 난리 칠 수가 없네.”라며 개의 뒤를 따라가 봤다.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는 개의 뒤를 따라 뒷산 골짜기에 이르러보니, 눈밭에 아기 포대기가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본처는 아기가 얼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차마 포대기를 차마 열지도 못한 채 통곡만 하는데 사람들이 서둘러 포대기를 풀어보니, 아기가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까르륵대며 어른들을 올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첩이 어린아이를 강보에 싸안은 채로 집을 나가자 개는 그 수상한 걸음을 따라 추격하였다. 그리하여 버리고 가는 것을 본 그 개는 웡!웡! 짖기만 하고 있다가 하는 수가 없었던지 그 밤 내내 아기를 네 다리로 꽉 싸안아 따뜻하게 하여가지고 날 밝기를 기다려 그 이튿날 아침에 주인에게 알린 것이다.
“주인은 개의 영특한데 감복하여 전일까지 대문간에서 ‘밥상 찌끄래기’나 먹이던 것을 안방 아기 자리 옆에 잠자리를 준비하고 첩에게 주던 음식을 주는 한편 꼭 사람과 같이 대우했다.”
첩은 경찰에 구금되어 준열한 취조를 받고 있다.
1936년 2월 24일 [동아일보] 신문 3면
글 민병욱|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