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비교에 따른 상대 평가 심리.
서로 간의 우열 평가 기준으로서의 상대성 상대성에는 2종류의 형태가 있다.
➀〘맞잡이〙끼리의 견줌
ⓐ가장 중요한 1순위 비교 대상은 서로 같은 존재인 주변의 가까운 남들이다. 그리고 좀 더 불꽃 튀기는 상대는 우열의 용질이 서로 비슷한 맞잡이들이다.
특히 성과를 중심으로 하는 비교 대상인 용재의 우열 평가의 기준으로서의 상대성에 관해서는 3부 4편. 객관적 평가관 1장 ❶용질 평가의 객관성《B》상대적 평가와 절대적 평가[]에서 상론하려 한다.
최초의 남극점 [정복(?)]을 다투던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을 떠올려 보자. 지구의 탄생은 50억 년 전의 일리라는 것이고 그것은 생물 탄생의 10000 배의 기간이어서 그에 비하면 인류 역사는 구우(九牛)의 일모(一毛)에 지나지 않는다.
남극점의 정복에 어떤 의의(意義)가 있다면 오랫동안 인류가 접근하지 못했던 그곳을 단지 먼저 밟았다는 것으로서 끝난다. 도대체 수십 여 일 앞서서 그곳을 정복했다는 것에 무슨 중요성이 있겠는가? 만약에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남극의 그 긴 생성 역사에 비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이 차이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영이나 단거리 경주에서와 같이 자기 제시의 상대적인 우열을 비교 평가하는 데서는 수십 분의 1초가 승패를 가르는 유의미한 차이가 되는 것처럼 [스콧]보다 30여 일 빨랐던 [아문센] 선점(先占)의 시간 틈새에는 실질적으로 인류 역사를 유의미하게 하는 남극에서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제시 경쟁에서는 그것은 실로 엄청난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남극에 관해 서술되는 모든 사료(史料)에는 남극 탐험의 최초의 인물이라는 영예가 오직 아문센에게만 돌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실질적인 발견 • 발명자보다 제시의 공공적(公共的) 상황에서 먼저 발표되는 사람이 영예를 홀로 차지하게 되는 일이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산소 발견자에 관한 일화도 그 일례로서 최초의 발견자인 스웨덴의 셸레(C. Scheele, 1742~1786)는 먼저 공표한 프리스틀리(J. Priestley, 1733~1804)에게 그 영광을 빼앗긴 것 아닌가?
사회에서 흔히 우열 평가를 측정하기 위해 시행하는 시험에 [자격시험]과 [순위시험]이 있다. 자격시험은 일정한 기능이나 자격을 지니고 있는가 없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실시하는 시험으로 지식이나 기능 유무 및 기능의 정도를 평가하는 절대평가 시험이다. 규정되어 있는 일정한 점수 이상에 들면 합격한다.
순위시험은 응시생들의 지식이나 기능 자체가 아니라 맞잡이들 사이의 우열을 비교하는 상대 평가 시험이다. 아무리 실력이나 기능이 우수하다고 해도 일정한 순위 안에 들지 못하면 불합격이다.
*서로의 힘과 꾀가 비슷하여 용재 경쟁에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대. 적수 호적수
예컨대 현재의 실력이 50점 정도인 응시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목표가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처럼 규정된 일정한 점수 ⸺60점⸺ 이상만 얻으면 합격하는 자격시험{절대평가 시험}이라면 다른 수험생과 경쟁할 필요 없이 그 자신의 실력을 10점 이상 향상시키므로써 그의 목표인 합격을 성취할 수가 있으며 지원자가 아무리 많아도 일정한 수준 이상이라면 전원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제시 본성은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운전 면허 시험과 같은 일정한 실력이 요구 수준인 자격시험이 아니라 “10위 이내”가 요구 수준인 순위시험{상대 평가 시험}이다. 요구 수준이 자격시험과 같은 절대적인 기준의 달성이라면 그것이 60점이 아니라 90점이라도 좋다.
노력에 따라서는 전원 합격도 가능한 것이므로 서로 협동하여 화목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그들의 목표를 추구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인성의 심리적 동기인 제시 본성이 요구하는 것은 그와 같은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예컨대 한국의 대학 입학시험이 그러하듯이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맞잡이〙들과의 비교에서의 우위 확보라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그래서 실력이 설령 80점이 아니라 90점이 넘는다고 해도 전원이 합격의 영광을 얻을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 있어서 경쟁이란 인간이 〘심리계(心理階)〙의 영향을 받는 존재인 한, 불가피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한국의 대입 시험은 모든 인간 드라마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➀치열한 우열 경쟁
근년의 한국 사회에서는 실력이 아니라 학벌이 거의 절대적인 우월성의 원천이다. “○순위 이내”에 들어야 합격하는 대학의 입학시험으로 그의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대학, 특히 일류 대학에의 입학시험이란 글자 그대로 “입시 전쟁”, 바로 그것이다.
인생의 관건이며 축소판인 이 입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합격선이 다름 아닌 “○점 이상”이 아니라 “○순위 이내”이어야 된다는 상대적인 우월성의 원칙이기 때문에 이 관문을 돌파하려는 당자들의 노력은 [입시지옥]이라는 표현이 가리키듯이 험난하기 짝이 없는 경쟁에 기울이게 되는 바이고 여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갖가지 수단과 방법이 강구된다.
그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과외 수업이다. 경쟁은 불가피하고 성적이 경쟁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하지 못하면 절대적인 실력이 90점을 넘어도 합격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정규 수업 이외의 시간까지도 오직 시험 문제 답을 요령 있게 적어넣는? 훈련에 뛰어든다.
그러나 경쟁의 상대자들 역시 상대적인 열세 아래에서 이 중요한 경기에 임하려고 할 리가 없다. 그들도 모두 경제적ㆍ심리적ㆍ신체적 부담을 무릅쓰며 과외 수업에 매달린다. 이래서 입시생들의 평균 실력이 무려 수십 점씩이나 향상된다.
그러나 절대적인 실력이 이처럼 향상되었음에도 무릅쓰고 합격의 가능성은 조금도 높아지지 않는다. 이는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도 경쟁 상대자들도 똑같이 기를 쓰고 노력하여 그들의 절대적 실력도 모두 같이 향상되어, 상대 성적 경쟁에 따라 애써서 얻은 효과가 상쇄되어 수준이 올라가지 않고 상대적인 실력의 차이가 거의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의 질량이 같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적인 우열의 평가 순이 달라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상대적 경쟁에는 승패의 끝이 없다. 곧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오는 이러한 사태를 필자는 [아달제 효과]라고 부른다.
세균과 그 숙주인 인간들의 항생제 사이, 또는 포식자와 먹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구사되는 경쟁인 [붉은 여왕 효과]*는 두루 알려진 것과 같이 루이스 캐럴의 소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주인공 앨리스에게 이 나라에서는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그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라고 한 말과 같이 [진화]는 늘 경쟁 상대가 함께 움직이면 제자리에서 더 나아갈 수 없고 따라서 쫓고 쫓기는 평형 관계인 생태계의 생존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밀리지 않으려면 계속 달려야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아마도 부모들에 따라서는 더 큰 경제적 • 심리적 출혈을 무릅쓰고 한 단계 더 고차적인 수험 공부 형태인 가정교사를 채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학부모들이 같은 방법을 쓰면서 경쟁한다면 절대적인 실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향상된 실력이 상대성의 원리, 곧 [아달제 효과]로 인해 서로 상쇄되어 버리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합격의 가능성이 조금도 높아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일은 다만 입시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모든 상대적인 경쟁에는 늘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달제} 효과]는 모든 경쟁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대원칙으로 리 반 베일른(Leigh Van Valen, 1935~2010)이 1973년 발표했던 [붉은 여왕 효과]와 똑같은 법칙이다. [붉은 여왕 효과]는 원리적으로 보아 아달제라는 경쟁 운리의 하위 개념이다.
그것은 생명체인 세균과 숙주와의 관계에 대한 [경쟁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미 • 쏘 간에 벌어졌던 군비경쟁, 진화하는 생물들 간의 생존 경쟁, 기업과 기업 간의 상품 개발과 판매 경쟁 등 상대적으로 우열을 다투는 모든 경쟁 관계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아가리[천적(天敵)]와 먹이, 찌르는 자[창(槍)]와 막는 자[방패(防牌)], 나음[우월(優越)]과 못함[열등(劣等)] 등의 씨름[경쟁]에서 이겨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평가가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평가의 대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평가의 객관적 근거가 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설명한 바 있듯이 제시 본성에서 우열의 직접적 평가에는 이와 같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절대적인 기준의 설정이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기준의 사용을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것이 제시 본성이다.
*직접적 평가에는 이와 같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단 직접적 평가가 아닌 간접적, 또는 궁극적인 평가에는 ┈확고하다고 주장하기에는 다소간 미흡하지만┈ 나름의 우열 평가 기준인 [가치관]이 있다.
개인이 지니는 제시 내용을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서 평가한다면 그 내용이 똑같은 이상 그것이 우월하든 열등하든 간에 언제 어디에서나 똑같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상대적으로 우월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제시의 내용은 마당{장(場)} 안에 생존하고 있는 맞잡이들의 실력과의 비교에 의해서만 판정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비교되는 상대방의 내용값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열의 평가는 서로를 견주는 상태를 결코 벗어날 수 없고 서로를 견주는 상태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처럼 제시 본성은 서로 간의 비교에서 맞잡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우열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야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상대적 우월성이란 일정한 수준 이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으로 우수하다는 뜻이며 열등함이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보다 못하다는 뜻일 뿐이다.
이러한 경쟁의 와중에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경제적ㆍ육체적ㆍ정신적 손실이 막대하므로 부담스러운 경제적ㆍ육체적ㆍ정신적 손실을 줄여보려고 만약에 과외 수업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한 개인만의 후퇴는 그 사람만의 낙오를 의미하게 될 것이므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곧 〘낭떨어지 효과〙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달리기에서 100m를 9초에 뛰는 준족의 선수 강이라고 해도 8초에 주파하는 낭이에 비하면 열등함을 면치 못하게 되고 의식주에 아무런 걱정이 없는 재산가인 강이라 해도 그보다 훨씬 부유한 재벌 사촌인 낭이에 비하면 그는 가난뱅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역으로 그와 반대되는 현상도 일어난다. 예컨대 100m를 20초에 주파하는 느림보 당이라도 21초 이상 걸리는 그의 다른 초등학교 급우인 랑이에 비하면 그는 우수한 선수이며, 겨우 끼니를 잇는데 불과한 빈곤한 당이라도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운 그의 친구인 망이보다는 부유한 것이다.
그래서 우열이 행불행의 지표라고 가정한다면 절대적인 수준에서는 강이가 당이 보다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수준에 있어서 낭이보다 열등하기에 강이가 당이보다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