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던 아이
로봇 완구, 좋아하시나요? 로봇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로봇 완구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의롭고, 멋지고, 강하고 용감하고. 그런 멋진 모습을 만화로 보고 나면 로봇 장난감도 가지고 싶어 지기 마련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솔직하게 국민학교이던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매일 일을 하러 가셨는데, 일 하러 가시면서 혼자 있는 제가 안쓰러우셨는지 매번 1000원씩 집에 두고 가셨습니다. 당시 1000원이면 언젠가 먹고 말겠다는 말을 하는 호랑이 친구가 그려진 과자를 3개나 사 먹고도 100원이 남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같이 놀던 친구가 없었던 저는 혼자서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집에서 놀곤 했습니다. (적고 나니 불쌍해 보이는데, 혼자서 잘 놀았고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답니다. 진짜예요.)
매일 6시쯤 TV에서 만화영화가 나왔습니다. 시기마다 나오는 만화는 달랐지만, 대부분 로봇이 나오는 만화로 기억합니다. 아니면 제가 찾아본 만화가 모두 로봇이 나왔던 걸 수도 있고요. 그날도 만화에서 나오는 멋진 로봇을 보고 멋지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문방구를 기웃거립니다. 그러다 우연히 보고 말았습니다. 지금 TV에서 나오는 로봇의 장난감을 말이죠!! 하지만 가격이 비쌉니다. 당시 가격으로 3000원인가 했습니다. 하루에 1000원 정도를 쓰는 제 입장에선 매우 큰 가격이었죠.
이런 상황이면 머리가 잘 굴러갑니다. 3일만 있으면 살 수 있겠네?? 란 계산을 합니다. 그렇게 어느 때보다 똑똑해집니다. 이 머리로 공부를 했다면. 그래서 장난감을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먹던 과자도 안 사 먹고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껜 비밀로 했습니다.
그렇게 3일 정도 지난날. 제 손에는 3천 원이 쥐어졌고, 원하던 장난감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토요일이었던 듯합니다. 돈을 들고 혼자 문방구로 갑니다. 그때는 주 5일제가 아녔으니, 어머니는 일하러 가시고 없었습니다. 소심한 아이는 문방구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고민합니다.
이렇게 비싼 장난감을 사도 되나...? 엄마가 싫어할 텐데... 근데 너무 가지고 싶다... 어쩌지, 어쩌지.
지금은 글자로 풀어내지만, 당시에는 그냥 "..........."인 상태로 문방구 주변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혼날 거 같고, 사면 안될 거 같고. 꽤 오랜 시간 어슬렁 거렸지만, 끝내 로봇이 이겼습니다. 거금을 주고, 장난감을 샀습니다. 원하던 로봇 장난감을요!!
이 로봇은 제 손으로 직접 산 첫 비싼 장난감이자 혼자 산 첫 장난감이었습니다. 기쁜 마음이 반, 죄를 지었다는 마음이 반, 두려운 마음이 반, 설레는 마음이 반. 온갖 감정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로봇을 들고 가지고 놉니다. 기존에는 100원, 300원짜리 조립형 장난감 로봇들만 가지고 놀았는데, 이건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세상에.
하지만 저는 죄를 짓고는 못 살 운명이었던 듯합니다. 조금 가지고 놀다, 금세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지? 곧 엄마가 올 텐데.
아이의 숨김 방법은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장난감을 숨기면 된다고 생각했고, 상자를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자를 버리고(정직하게 쓰레기 통에), 안에 있는 스티로폼도 버리고(역시 쓰레기 통에), 로봇은 이불속에 숨겨뒀습니다. 그리고 잘 가지고 놀지도 않던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어머니를 맞이합니다.
어머니가 돌아오시고,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십니다. 아마 인사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는 아들을 보면 "뭔가 숨기는구나" 정도는 금방 보였을 거 같네요. 그렇게 어머니는 제게 추궁을 했고, 결국 울면서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장난감이 갖고 싶어서 장난감 샀어...."
사실 저렇게 또렷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울다가 이불속 장난감을 들켰고, 어머니께서 "장난감 샀어?" 하고 묻고, 끄덕였던 듯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갖고 싶으면 사서 놀면 되지, 왜 숨겼어?"라고 돼 물으셨지만, 끝내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 날, 어머니께서는 "가지고 싶으면 사도 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용돈으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하셨죠. 왜 그땐 그걸 몰랐을까 싶네요.
아내와 이 이야기를 해보니, 아내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용돈을 모아서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고, 혼날까 봐 숨기고. 그리고 울면서 들키는. 아마, 당시 힘들게 사셨던 부모님들의 모습이 살짝 스치는 건 어떤 이유인지 알 거 같아서 인 듯싶습니다. 아내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PVC 파이프 탓을 했을 거 같은데...
이런 경험들은 아이를 키울 때 많은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가령, 새로 나온 로봇 장난감이 나오면 아이에게 사주고 싶어 지곤 합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사줄 수 있을 듯합니다. 곧 아이의 생일이니, 로봇 완구 하나쯤 사주고 싶어 지네요. 마침 봐뒀던 장난감도 있어서 아이에게 권해봅니다.
"이번 생일 선물로 로봇 장난감 사줄까?!"
"아니."
"이거 봐봐, 로봇인데 공룡으로 변신도 해!!"
"싫어~~~"
"아니, 다시 봐봐!!"
"싫어!! 포켓몬 인형 사줘!!"
아니, 멋진데... 왜 관심이 없지. 아빠가 가지고 놀아도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