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달랐네요!
저와 아내는 동갑내기입니다. 태어난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시간대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공통점이 많아야 할 두 사람이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보면 공통점 보단 차이점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생각보다 더 말이죠.
집 근처에 논이 있고, 논에서 쉬고 있는 소에게 여물을 주며 놀았던 어린 시절. 이 시절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거짓말하지 마라고 합니다. 어떻게 집 근처에서 소가 사냐며. 음, 진짠데... 그렇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렸을 적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봅니다.
동네에서 놀았던 이야기, 동네 구멍가게 이야기, 소독차 이야기, 재래식 화장실 이야기, 과자 가격 이야기, 국민학교 이야기, 유행 이야기 등등등. 같은 시간대를 보냈지만, 환경이 달라 서로가 신기해하는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새삼 시골과 도시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 이야기 중, 아내가 가장 놀라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학교에 난로가 있었다는 이야기. 학교에 난로가 왜 있냐는 아내의 말에 왜 없냐는 답변을 하게 되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기억을 떠 올려보면 국민학교 저 학년 시절, 그것도 잠시 동안 경험했던 일입니다. 아직 초등학교로 불리기 전, 국민학교였던 시절.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교실 중앙에 난로가 있었습니다.
난로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습니다. 난로 위에 황색 주전자가 있어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었고, 한 번은 포일에 싼 고구마를 올려두고 다 같이 고구마를 먹어볼 수 있었다 정도. 아쉽게도 도시락은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중, 김해로 이사를 가면서 난로가 없는 학교로 가게 되었거든요. 아마 더 길게 다녔다면 도시락에 대한 추억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난로 주위에는 아이들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펜스 같은 게 있었는데, 그리 높지 않아서 손을 뻗으면 난로에 손이 닿였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난로를 만져보며 놀았었습니다. 아직 켜지기 전 난로는 그저 장난감이었죠.
딱 이 정도가 제가 기억하는 난로의 추억. 연통이 있었는지, 난로의 모양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학교 뒤편에서 나무를 가지고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나무 난로였지 않나... 싶은데, 이것도 아리송합니다. 하필 이 시기에 어머니께서 목공 가구 공장에서 일을 하셨었다 보니, 이 기억인지 학교 기억인지.
이런 경험들이 있었다!! 는 이야기를 해주니 신기해합니다. 그중에서도 나무 난로였던 듯했다고, 나무를 가지고 온 적이 있단 이야기를 하니 더 신기해합니다.
"나무... 땔깜?"
음... 아니라고 하고 싶어 지네요.
- 오래된 기억이고 짧았던 탓인지, 글을 쓰면서도 진짜 맞았나... 했습니다. 쓰읍, 유치원 때는 아닌 거 같으니... 국민학교 때가 맞겠지...?
- 이 외에도 난로를 접했던 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캠핑으로 난로를 접하고 있으니 난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듯합니다. 사주에 화가 많다더니 설마....
아닌 항상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재밌게 듣습니다. 고마운 점은 별다른 편견 없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점이죠. 학교에서 난로를 사용했단 이야기에 '왜?'가 아닌 '그렇구나~'의 반응을 해주는 아이가 새삼 고맙습니다.
"어떻게 학교에 난로가 있을 수 있지?? 진짜 이상하다 그치?"
"응응!! 엄마 말이 다 맞아! 아빠 이상해!!"
..... 적이 저기에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