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가기 싫어!

그... 안 먹어도 되는데...

by 펠릭스

저희 가족은 주말 동안 욕지도에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바로 전에 썼던 글이 '갑작스러운 장염엔 이유가 있다!' 란 글인데, 저 글을 쓰는 시점까지 캠핑을 못 갈 줄 알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의 회복은 빨랐고, 아이도 캠핑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지는 척 캠핑을 떠났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예정된 배를 놓치고, 캠핑 장비 중 전기 릴선을 안 가져가고, 화로에 쓸 집게도 안 가져가긴 했지만.... 캠핑 내내 날씨도 좋았고, 아이도 즐거워했으니 액땜한 셈 치고 어찌어찌 보냈네요. 그렇게 캠핑을 끝내고 집에 온 뒤, 대충 정리하고 잠자기에 들어갑니다.


평소라면 책 읽기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아이의 장난이 펼쳐지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도 피곤한지, 아니면 캠핑에 다녀온 뒤에 방 전체를 장난감으로 도배를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얌전히 불을 끄고 눕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나 유치원 가기 싫어"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저 말이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잠이 들려던 아내도, 저도 조금 놀라서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유치원에 왜 가기 싫어?"

"그냥, 가기 싫어~ 집에서 재밌게 놀래!"


"유치원에 가면 바깥 놀이터도 있고 재밌게 놀 수 있잖아?"

"응~ 그런데, 거기는 미끄럼틀이랑 모래 놀이터랑 밖에 없어서 재미없어."


"친구들하고 같이 놀면 더 재밌잖아~ 요즘은 친구들하고 괴물 놀이 안 해?"

"응~ 유치원에서 혼자 놀아."



짠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혼자 논다는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장난을 함께 하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논다"는 의미에 가깝거든요.


다른 친구가 자기를 때리고 괴롭혔다고 했는데, 막상 그 친구를 만나보니 같이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며 장난을 치고 함께 논다거나(그러곤 이제는 아니래요...), 운동회 때는 다른 친구와 자리에서 바나나를 나눠 먹고 있다던지(말은 해주고 가지 그랬니....).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혼자 논다는 의미가 조금 다른 듯했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안 놀아줘?"

"친구들한테 같이 놀자고 안 했어."


"그럼 같이 놀자고 하면 되지~"

"음~~"



음, 부끄러운가 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먼저 말 걸어봐~~ 라며 이야기가 종료되려는 찰나. 유치원 가기 싫다의 본모습이 드러납니다.



"삶은 계란 먹기 싫어~~"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유치원 점심에 삶은 계란이 나왔다. 그것도 매주 나온다. 그거 먹기 싫다. 근데 안 먹으면 안 된다. 그래서 유치원 가기 싫다. 가 되네요. 잠든 줄 알았던 아내가 아이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꼭 안 먹어도 괜찮아~ 당근을 싫어하는 친구도 많지? 그런 친구처럼 서후도 삶은 계란을 싫어하는 거야. 꼭 안 먹어도 괜찮아~"



그리고 저는 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아빠도 못했다!! 란 이야기를 하면 아이가 참 좋아합니다.



"아빠는 어렸을 때 당근을 엄청 싫어했어. 그리고 지금도!"



..... 부끄럽지만, 지금도 당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대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 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입니다.



"아빠도 아이였을 때, 삶은 계란 싫어했었어. 그래서 안 먹었어. 그런데 학교 가고 나니까 먹게 되었어. 나중에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계란맛이 너무 싫은데? 어떻게 하면 계란맛을 안 나게 할 수 있어?"


"음, 그럴 땐 다른 맛으로 가리면 좋아. 케첩이나 소금 같은 거랑 같이 먹으면 괜찮아."

"그래도 유치원 가기 싫어. 화요일마다 삶은 계란 나온단 말이야."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괜찮아~ 언제 삶은 계란 나오는지 한번 확인해 줄 테니까 이제 자자!"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아이를 재웁니다. 계란말이계란 프라이는 뺏어먹을 정도로 좋아하면서 삶은 계란은 싫어하다니. 하긴, 초콜릿도 싫어해, 젤리도 싫어해. 식감이 약간 젤리 같아서 싫어할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갑니다.






나중에 유치원 식단을 확인했는데, 삶은 계란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아이에게 꼭 먹여보고 싶다고 장조림을 조금 먹였었는데, 너무 싫어했었습니다. 혹시 그거였니.....? 장조림을 한 입(그것도 아주 조금) 먹고 그다음 날 장염에 걸렸는데, 그 때문에 삶은 계란을 싫어하게 된 게 아닐까란 생각이 살짝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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