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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강이 Nov 27. 2020

리얼생존 뉴스레터 Vol. 5. 11월 4주차

단편소설, 단막극 드라마 <일의 기쁨과 슬픔> by 경영지도사 김민지


판교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창업자 시각에서 다시 본다면


- 이번 뉴스레터는 장류진의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며칠 전 KBS에서 장류진 작가가 쓴 <일의 기쁨과 슬픔>을 원작으로 삼은 단막극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현재 스타트업계에서 화제가 된 tvN <스타트업>처럼 스타트업을 주요 무대로 삼은 작품이죠. 최근 <스타트업>이 12화까지 방영되면서, 지나치게 극적인 전개 때문에 현실감이 없다는 혹평을 듣는 사이,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적인 스타트업을 담았다는 호평을 받았어요.


(VC가 창업자에게 쓴 소리 좀 했다고 강냉이 터지게 맞는 드라마 <스타트업>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이거 장르가 청춘 로맨스가 아니라 OCN 수사물 아니냐는 얘기 나왔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간단한 플롯을 소개합니다.



배경은 동네 기반 중고거래 앱 '우동마켓'을 만드는 스타트업 (그렇습니다. 당근마켓 패러디입니다.) 우동마켓에는 ‘거북이알’이라는 유저가 하루에도 백 개도 넘는 신상 제품을 정가보다 살짝 싼 가격에 올립니다. 심지어 판매하는 제품에 일관성도 없어요. 공기청정기, 청소기, 파운데이션, 홍삼, 레고...



우동마켓 대표는 예측하지 못한 거북이알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거북이알은 어뷰저로 추측된다. 혹시 물건을 훔쳐다 파는 장물아비일지도 모르지 않나. 

이런 불량 사용자가 끼면 서비스에 논란이 생기는데... 



대표는 서비스 기획자 안나를 불러 거북이알과 만날 것을 요청합니다. 

거북이알의 정체는 뜻밖에도 대기업 유비카드사의 혜택기획팀 차장 '이지혜'.  

이 차장은 자신이 왜 우동마켓의 파워 셀러가 되었는지 웃픈 사연을 고백합니다. 



유비카드사 조운범 회장은 2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셀럽. 클래식 애호가인 조 회장은 자사에 공연기획팀을 두고, 고객의 감성을 채워줄 문화 공연을 기획해요. 천재 아티스트 루보프 스미르노바의 내한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차장은 3번이나 러시아를 왔다갔다합니다.



그리고 이 차장은 마침내 성사시킨 이 공연을 회사 공식 채널에 홍보하지만, 그녀는 약속했던 특진 대신 뜻밖의 페널티를 받아요. 인스타그램 광인 조 회장은 이 소식을 공식 채널보다 자기 개인 계정에 먼저 올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거든요. 그게 막히니까 이 차장에게 화풀이를 한 거죠. 



조 회장은 이 차장의 1년 월급을 돈이 아닌 카드사 포인트로 줘버립니다. 그래서 카드사 포인트로 물건을 사고, 당근마켓...아니 우동마켓으로 수익을 얻는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스타트업 문화가 너무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판교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누적 조회건수 40만건을 기록하고, 2018년 가을,  제 21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기록을 세웠습니다. 



제가 읽어봐도 이 짧은 소설 안에 스타트업이 알아두면 좋을 인사이트가 가득합니다.



- 애자일, 스크럼 등 최신 방법론의 본질이 아닌 형식만 따라하면 업무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가? 

- 대기업의 갑질이 어떻게 예측하기 힘든 소비자 행동을 자아내는가?

- 서비스 기획자 및 대표 입장에서 고객을 정말 진정으로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생존을 위한 고객의 몸부림은 뜻밖의 행동을 불러 일으킨다

- 스타트업의 서비스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평등한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에 영어 이름 사용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가?

- 비화폐 경제의 실현은 가능한가?

- 공공 영역의 행정 낭비 

- 고객은 어떤 포인트에서 마음을 열고 구매를 결정하는가? 



가능하면 이 질문에 대해 제가 생각한 것을 모두 이번 기사에 담아내고 싶지만, 그러면 분량이 터무니없이 길어지니 우선 소설의 첫머리에 나오는 스크럼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스크럼이란?



스크럼의 본래 의미는 럭비 용어인데요, 선수들이 한 대 뭉쳐서 그 가운데 넣어진 공을 발로 빼앗는 대형이예요. 이게 업계에서는,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각자 업무 분야에 대해 말하는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을 의미하죠. 



스크럼은 애자일 (Agile) 방법론을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애자일이란 원래 소프트웨어를 개발 때 사용하는 방식인데, 일반적으로 스포트웨어를 개발할 때 계획 수립-완성품 제시의 과정으로 진행된다면, 애자일 방법론은 개발 중에 즉각즉각 중간 단계부터 고객들 피드백을 받아가며 소프트웨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이죠.



즉 스크럼의 의도는 짧은 시간 안에 팀원들끼리 업무를 공유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스크럼의 형식만 따라하고 정작 스크럼의 의도를 전혀 실현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합시다. 스크럼.”


오전 아홉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스크럼 시간이다. 스크럼이란 이천년대 초반부터 미국 씰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애자일 방법론의 필수 요소로, 우리 회사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널리 쓰이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다. 데일리 스크럼의 대원칙은 이렇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각자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 스크럼 마스터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 서로의 작업 상황을 최소 단위로 공유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애자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스크럼이라면 이 모든 과정이 길어도 십오분 이내로 끝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 대표는 스크럼을 아침 조회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심히 문제였다. 직원들이 십분 이내로 스크럼을 마쳐도 마지막에 대표가 이십분 이상 떠들어대는 바람에 매일 삼십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중략)


출처 :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 속 대표는 스크럼의 형식만 따라했지, 스크럼이 추구하는 본질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만 스크럼인 아침조회를 하면서도, 직원들의 피로감만 쌓일 뿐, 대표-개발자-기획자-디자이너 각각의 업무 내용과 목표는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업무가 따로 노는 상태입니다. 






사십오분 만에 스크럼이 끝났다. 우리는 마침내 각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등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출처 :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 직원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걸 이 서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동마켓 직원들이 다른 직원의 업무에 대해 이해가 부족함은 다음 맥락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표 데이빗은 돌출 행동을 보이는 유저 ‘거북이알’의 행보를 싫어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우동마켓’은 현실의 ‘당근마켓’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타트업입니다. 그러면 우동마켓 역시 당근마켓과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수수료 전혀 없이 오직 ‘지역 기반 비즈니스 광고 플랫폼’을 표방할 것입니다. 작중에서도 그 언급이 나옵니다.






“우리 서비스의 취지와 맞지 않는 사용자를 이대로 둬도 될까? 

앱을 딱 켜고 들어왔는데 온통 거북이알의 글로 도배되어 있으면, 사용자들이 우리 서비스를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이라고 생각할까? 이쯤 되면 어뷰저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지. 어떻게 페널티를 줄 수 없을까?“


출처 :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그러므로 거북이알처럼 하루에 100개나 넘는 거래를 저 혼자 올린다고 해서 우동마켓의 수익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신뢰도만 떨어질 뿐이다. 이러면 투자 받을 때도 차질이 생긴다. 대표 입장에서는 충분히 걱정될 만합니다. 



 하지만 서비스 기획자인 안나는 거북이알의 돌출 행보가 왜 사업의 흐름에 자칫 위협이 될 수 있을지 인지하지 못합니다. 기획자의 눈으로 보면 거북이알의 행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거북이알 때문에 지표가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다고요. 페이지뷰, 사용자 수, 재방문율 모두 거북이알 등장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요. 거북이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규가입자 수 비율도 매주 늘고 있어요. 게다가 거북이알의 거래성사율은 백퍼센트예요.  어뷰저가 아니라 오히려 충성 사용자라고 보는 게 맞죠.”


출처 :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기획자로서 안나의 이 말은 정확한 해석입니다. 하지만 대표가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한 기획자라면 다른 대답을 했겠지요. 



즉, 데이빗 대표가 아무리 스크럼을 백날 천날 한다해도, 정작 직원들은 업무를 나 아닌 다른 포지션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빗, 정말 시간 낭비만 하고 오히려 직원들의 피로도만 가중시켜서 업무 효율성만 떨어트렸네요.



소설을 보면 데이빗에 대한 안나의 태도는 시종일관 냉소적이고 싸늘합니다. (그럴만도 하죠. 그 놈의 스크럼 때문에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이니까요.) 안나의 필터링을 통해 언급되는 데이빗은 상당한 비호감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독자들도 데이빗을 자칫 빌런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어요.



하지만 소설의 화자인 막내 사원 안나와는 다르게, 저는 스타트업 대표들과 직접 소통합니다. 각 대표님들의 고민과 고충을 다 아는 입장에서 데이빗을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창업자는 아닌 듯 합니다. 



제가 본 데이빗은 자기 세계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 면이 눈치 부족이나 푼수끼 등의 안 좋은 면모로 나타나죠. 직원들이 피로감을 호소해도 눈치 없이 스크럼을 지속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데이빗은 기본적으로 책임감 있고 업의 본질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는 좋은 대표입니다. 천재 개발자 케빈 같이 까다로운 인재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일만한 설득력도 갖춘 사람이예요. 자기 자아가 너무 강한 건 단점도 되지만 또한 사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설정상 우동마켓은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앱 중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편이라 스타트업으로서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라고 묘사됩니다. 

 또 데이빗이 눈치가 없긴 해도, 아예 배려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증거가 작중에 표현됩니다. 기획자 안나와 개발자 케빈 사이의 갈등을 잘 알고 있으며, 2살 어린 케빈의 예민함과 푸념, 짜증을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안나를 위로하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하죠. (정작 대표에게 스트레스가 쌓인 안나는 이러한 시도도 냉소적으로 보고 있지만...)





“광고만 붙이고 나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기획자 한명 더 뽑아줄게.”


“기획자 뽑기 전에 아이폰 개발자부터 뽑으세요. 제가 죽겠어요.”


“왜, 케빈 요즘도 안나한테 짜증 부리나?”


“말해 뭐해요.”


“케빈 이 새끼 이거, 오냐오냐해줬더니 안 되겠네.”

 대표가 난데없이 케빈의 의자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바퀴 달린 사무용 의자가 사무실 입구까지 속절없이 굴러갔다. 케빈 앞에서는 절대 못할 행동이었다. 케빈이 퇴사한다고 하면 대표는 무릎이라도 꿇으면서 붙잡을 사람이었다.


출처 :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서술자 안나는 대표의 제스처를 표리부동한 행위라고 부정적으로 간주합니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뒤에서 남의 험담이나 하는. 



하지만 저는 대표의 의도를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했어요. 안나의 입장에 공감해줘서, 안나와 케빈의 갈등을 좀 완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요. 이 대목에서 저는 대표가 일방적으로 한 직원만을 편애하지 않고 골고루 힘을 실어주면서 조직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리더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 소설은 스타트업 직원들에게 폭풍같은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키며 지지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대표가 다소 빌런처럼 묘사되어서 그런지...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읽으면 자칫 오히려 멘탈이 조금 상할지도 몰라요. 저는 그래서 많은 대표님들의 생각을 대변해서, 소설 속 빌런처럼 묘사된 데이빗 대표님을 좀 두둔하고자 했습니다. 스크럼만 안하면 당신은 정말 괜찮은 대표님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아마 단막극으로 각색하면서, 제작진도 데이빗이 그렇게까지 나쁜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고 보면 성실하게 일하는 창업자임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데이빗 전용 컷이 짤막하게 나와요. 친구와 함께 탄천 굴다리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금 문제로 고민하면서 한숨짓는 모습이요. 



스타트업을 다룬 특정 작품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열심히 사업을 위해 뛰고 계신 창업자 여러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달하고자 하는 제 뜻이 통했는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몰라줘도, 직원들에게는 괜히 공공의 적으로 느껴져도, 창업자 여러분들 열심히 하고 계신 거 저희들이 잘 알고 있다고요! 이 글을 읽은 후 대표님들 마음에 의욕이 가득히 차오르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김민지 | 경영지도사, 서울시립대 창업지원단 


2015년 경영지도사(마케팅) 자격증 취득 이후 대학교 및 지자체의 창업보육센터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넓게 교류하며 진심으로 소통하며, 각 대표님들의 마음의 불안이나 초조함 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글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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