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냄새 가득한 30일의 기억

by 셀앤서

졸업 후 인턴으로 처음 일하게 된 곳은 한 대형마트의 영업관리 직무였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고시라는 말이 붙을 만큼 입사 경쟁률이 치열한 학과 중 하나였다. 지나치게 현실 파악이 빨랐던 나는 그나마 합격 가능성이 높은 일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력을 활용할 수 있었던 대형마트나 편의점 브랜드의 영업관리 직무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아 여러 번의 탈락을 경험한 끝에야 겨우 인턴십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인턴이기는 했지만 우수하게 수료하는 사람에게는 정직원 채용의 기회가 있었다. 심지어 전환율도 90%가 넘는다고 하니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인턴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대형마트의 인턴십 프로그램은 총 두 달간, 한 달씩 두 개의 매장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근무 시작 전 참석한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유니폼과 명찰을 지급받았다. 그리고 팀을 이뤄 근무하게 될 매장에 대해서 공부하고 조사도 하며 동기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같은 조였던 동기들은 나보다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타지에서 인턴을 위해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가진 것들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교육 마지막 날, 원하는 부문에 배정을 받은 나는 동기들과 열심히 해서 꼭 함께 정직원이 되자는 다짐을 하며 본격적인 근무에 뛰어들었다.


대형마트 인턴으로 내가 담당했던 주요 업무는 물류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창고로 입고되는 상품을 매장으로 가져와서 제 자리에 정리하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 지렛대의 원리로 팔레트에 높게 쌓인 물건을 들어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키라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난생처음 본 자키를 끌었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자키 손잡이를 잡고 물류 팔레트를 끄는데 이게 생각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나는 운전면허도 없었고 심지어 자전거도 잘 타지 못했다. 그런 내가 핸들을 잡고 자키를 움직여서 매장의 여러 구역을 통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몸집보다 훨씬 큰 물류 팔레트는 어떤 제품이 쌓여 있느냐에 따라 무게도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냄비와 프라이팬 등 무거운 주방 조리도구가 가득 쌓인 팔레트를 끌면서는 여기서 근무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자키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거워서 두 손으로 낑낑거리며 이동해야만 겨우 끌리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운전이 미숙한 탓에 다른 파트의 진열장에 부딪힐뻔한 아찔한 사고도 몇 번이나 발생할 뻔했다. 다행히 선임님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지만 충돌로 물류와 매대가 파손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가져온 물류는 입고가 맞게 되었는지 확인한 다음 각 진열장에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에도 빠른 정리를 위해서 익혀야 하는 기술이 있었다. 함께 근무하는 여사님들께 배운 것인데 추락 방지를 위해 랩핑 된 상태로 입고된 상품을 뜯기 위해서는 칼이 아닌 볼펜을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볼펜으로 랩핑 된 틈새 부분을 쭉 그어주기만 하면 상품의 파손 없이 랩을 쉽게 뜯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박스의 테이프를 뜯기 위해서는 박스를 옆으로 돌린 다음 테이프가 붙여진 옆 부분과 틈을 살짝 눌러주면 테이프가 들리면서 쉽게 뜯어낼 수 있었다.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이때 배운 기술은 지금도 일상에서 택배를 뜯을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물류 도착했대요. 저 혼자 다녀올게요."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이런 경험으로 나는 혼자서도 자키를 끌고 다닐 만큼 업무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욕심을 내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목장갑이었다. 처음에는 빨간 손바닥에 흰 면으로 된 기본 장갑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을 보니 다 다른 장갑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음 쉬는 날이면 일할 때 사용할 장갑 쇼핑을 가고는 했다. 장갑 진열대 앞에 한참 서서 여러 브랜드의 장갑을 껴보며 내 손에 딱 맞는 장갑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남은 인턴 생활 동안 나와 함께 할 최고의 장갑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대형마트에 일하면서 좋았던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휴게실이 있다는 것이다. 지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곳은 남녀로 나뉘어 큰 방 하나가 휴게실로 제공되었다. 함께 근무했던 선임님이 처음 이곳에 나를 데려갔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많은 근무자들이 휴게실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벽에 기대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색함에 머뭇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그 방의 한가운데서 낮잠을 잘 만큼 잘 적응하게 되었다. 뜨끈뜨끈한 바닥에 누워 여사님들의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땀과 근육통으로 힘들었던 몸이 사르르 녹으면서 저절로 잠에 빠져들고는 했다.


휴게실 말고도 내가 좋아했던 또 다른 장소는 사다리 위였다. 상품 매대가 높은 곳에도 있던 터라 상품 진열을 위해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높이 올라갈 때면 고소공포증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양쪽으로 지지되는 사다리는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사다리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매장의 모습은 근무 중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시야가 넓게 확보되는 장점이 있어 고무장갑을 진열하면서도 상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기에 용이했다. 그렇게 사다리 위는 나의 최애 장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 달간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부딪히며 어느덧 해당 지점에서의 근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작별인사를 위해 동기들과 함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마음껏 술을 마시며 즐거움을 느낀 것도 잠시 미디어가 아닌 현실 속 회식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억지로 술을 마시라고 강요를 당하기도 했으며, 술에 취한 상사들이 하는 선 넘는 발언을 하염없이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겪은 몇 시간의 회식은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끔찍한 일이었다. 다만 이 경험으로 나는 티 나지 않게 몰래 술을 버리는 기술은 익힐 수 있었지만 말이다.


가끔은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싶은 날이 있다. 잠시 앉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중간에 잠시 한숨을 돌릴 때의 개운함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리고 근무하는 동안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매우 좋았다. 물론 가끔은 땀과 먼지에 뒤범벅된 옷과 얼굴을 보며 현타가 오는 순간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게 성과를 내는 일은 직접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직접 굴러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노동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그 경험으로 배운 가치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또 다른 일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처음 인턴십을 위한 면접을 볼 때 내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면접관 한 분이 나에게 현장직과 사무직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별 다른 고민도 없이 현장직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보다 마른 탓에 늘 기운이 없어 보이던 내가 이런 답을 한 것이 면접관들에게 얼마나 웃겼을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누군가 나에게 그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때와 똑같이 답할 것이다. 현장에서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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