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나섰다. 포기는 없다. 내 인생 최대 숙원인데, 시작부터 좌절한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언제 내 삶이 순탄했던 적이 있었던가.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돕는다고 믿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청호를 한 바퀴 돌았다. 혹시 폐교를 얻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마을 부동산마다 연락처를 남기며 발품을 팔았다. 좋은 땅을 구하는 길은 늘 두 다리의 고생이 필요했다.
얼마 후, 인근에서 폐교 매매 공고가 떴다. 곧바로 현장으로 내려갔다. 시설과 규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동틀 무렵, 차를 길가에 세우고 교문 앞으로 걸어갔다. 담장 너머로 희미하게 운동장이 보였다. 문은 열려 있었다. 마을에서 여전히 시설을 이용하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운동장이 생각보다 넓었다. 녹슨 시소와 그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모래가 남아 있는 씨름장이 있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완벽해 보였다.
교실 내부는 잠겨 있었지만, 2층 규모의 아담한 건물은 관리가 꽤 잘 된 상태였다. 창고와 관사까지 별도로 마련돼 있었고,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었다.
급히 서울로 복귀해 직원들과 회의실에 모였다. 현장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며 긴 토론이 이어졌다. 지난 심의에서의 좌절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스스로 논리를 새롭게 짜가고 있었다.
첫 심의를 경험한 덕에 사업계획서는 금세 손에 잡혔다. 문제는 건축물의 용도였다. 우리는 단순히 유기견 보호소로 한정하지 않고, 애견 복합 문화센터라는 개념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호의 차원을 넘어 문화시설, 식음료 공간, 캠핑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구조였다. 무엇보다 이 시설이 원주민들의 일상과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교실 일부는 무명 화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그들이 시골 마을에 정착해 창작 활동을 이어가도록 돕는 대신, 주말마다 작업실을 개방하고 작은 전시회를 여는 조건을 붙였다. 카페와 음식점은 지역 농산물 직거래를 통해 메뉴를 구성했고, 지역 상권과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했다. 카페의 음료와 음식은 지역 주민에게는 횟수 제한 없이 무료로 제공해 마을의 쉼터 같은 역할을 하도록 했다.
캠핑장은 밤 9시부터 ‘매너타임’을 도입하기로 했다. 단순한 소음 규제가 아니라, 9시부터 11시까지는 명상의 시간으로 정해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나아가 주민들과 협력해 주말농장과 비닐하우스 체험을 연결, 지역 경제 활동에 보탬이 되는 구조도 담아냈다.
이번에는 확신이 있었다. 혼자만의 비전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그림을 담았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통과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