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계획서로 끝낼 일이 아니다. 현실화가 필요하다. 오늘도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은 마을 주민들을 만나러 간다. 지역 상생은 결국 주민들과의 합이 제일 중요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당산나무 아래 평상이 보였다.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데, 의료형 보행기를 밀고 지나가던 할머님이 말을 건다. 이런 시골에선 새로운 얼굴이 늘 튄다. 사정을 말씀드리니 언덕 위 빨간 대문집이 이장님 댁이라고 알려주신다. 다만 오늘은 장날이라 집에 없을 거라는 귀띔도 해주셨다.
기다릴 수밖에.
마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장터로 향했다. 도시 오일장도 재미있지만, 이런 시골 장터는 더 정겹다. 불로장생 약재부터 없는 게 없다. 시식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이장님 뵙는 게 급선무라 그닥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 다시 이장님 댁을 찾았다. 폐교 매입과 사업 계획을 말씀드리고 있는데, 때마침 저녁이라 어르신들이 하나둘 들어오신다. 새로운 분이 오실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 또 설명. 내 영혼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나도 밥상에 앉아 있었다.
시골 인심은 참 따뜻하다. 술 한잔 하라 권하시지만, 차를 몰고 올라가야 하니 사양했다. 대신 취기가 오르실 때쯤 다시 말씀드리니, 이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걱정 말어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께.”
이럴 땐 술의 힘이 참 고맙다.
확답을 얻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직원들과 회의를 했다. 마을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토대로 사업계획서를 다듬었다.
며칠 뒤 다시 마을로 내려가니, 이번엔 먼저 알아봐 주신다. 이장님이 주민들을 모아주셔서, 우리는 사업계획서를 설명하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남겼다.
지역 상생 방안을 설명드렸다. 농산물은 직거래로 구입하고, 비닐하우스 체험을 열면 체험비 전액은 농가에 지급하겠다고 약속드렸다.
어르신들은 묵묵히 듣기만 하셨다.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늘 어렵다. 반응이 없으시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어려운 주제를 가져왔나 당황할때쯤, 이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하신다.
“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니것슈. 지가 알아서 할께유”
학급회의 끝나고 박수로 마무리하던 어린 시절처럼, 모두의 박수로 설명회는 끝이 났다.
이제는 심의 준비만 잘하면 된다. 우리는 그 시간을 위해 전력 질주하여 마지막날 까지 사업계획서를 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