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공사와 계약하는 날이다. 생각보다 금액이 많이 나왔다. 자체 검토를 여러 번 했지만 타당한 금액이다. 공사비를 충당하려면 중간에 돈을 더 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취지의 뜻을 이해해 줘서 지급 시기는 조금 조정을 했다.
메타츄 공사는 대수선 공사가 포함되어 있어 착공신고를 해야 한다. 아마 일주일 길어도 10일 안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외부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과거 시간의 모습은 최대한 살리는 안이며 부분 부분의 큰 공사와 포인트를 주는 변화만 주려고 한다.
오늘은 새벽부터 메타츄로 향한다. 오늘이 착공일이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큰 공사는 아니지만 오늘은 모두가 함께한 기념의 날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모두들 나와서 분주했다. 일부 가설 비계를 설치하기도 하고, 폐기물을 뜯어내야 해서 공사차량으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역사가 기록되는 순간이니까. 한 장 한 장이 소중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려왔나. 가슴 벅찬 날이었다.
건축 설계라는 직업이 생기면서, 내 사진첩에는 사람보다 건물이 99%다. 어디서 무엇을 보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기록한다. 그게 몸에 밴 것이다. 기록의 시작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건물 이곳저곳을 돌며 존치해야 하는 부분과 철거를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다녔다. 리모델링에서 남겨서 활용하고 하는 부분이 의도치 않게 철거가 돼버리면 되돌릴 수가 없다. 철거해야 될 부분들은 직원들이 붉은색 락커로 엑스자를 그려가면서 표기했다. 존치해야 될 부분은 한 명씩 앞에 서 있는다. 도면에 있어도 믿을 수가 없다. 인부들은 도면을 보지 않고 현장 소장의 명령만 따른다. 혼돈하면 계획안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워낙 많은 인부들이 오고 가니 직원 한 명이 감리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이 됐다. 다른 직원들도 철거 기간에 남기로 했다. 수많은 시간 고민했던 결과물이 누군가의 무심함으로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계라는 게 그렇다. 내 자식과 같은 결과물이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우리에게는 전부인 것이다. 그래서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발적 참여를 하게 된다.
일주일간 직원들이 머무를 숙소를 급히 구했다. 차도 한 대 렌트했다. 고마운 직원들에게 뭐 하나 더해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금전으로 보상해 줄 수밖에…
같이 모여 철거 시 유의할 사항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서로 상기시키고 나는 홀로 서울로 다시 복귀했다. 새벽부터 움직여 피곤한 하루지만 뜻하지 않게 현장 파견된 직원들을 생각하면 피곤한 것도 아니다. 미안함만 따를 뿐.
이런 우리의 행동들은 현장에서도, 결과물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계획안이 온전하게 구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자발적 참여가 자연스럽다.
보이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할 때, 그 결과는 우리의 계획안과 닮아간다. 그래도 끝나면 늘 아쉽다.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