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건축물 가운데 단독주택을 제외한 주거용 건축물에는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가 도입되어 있다. 누가 감리 업무를 수행할지 알 수 없도록 모집한 감리자들을 무작위 추첨으로 배정하는 방식이다.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에 해당하는 건축물의 설계자는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에 감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이 경우 설계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설계자 의도 구현’과 ‘역량 있는 건축사’라는 예외 조항을 두었다.
그러나 설계자 의도 구현의 경우, 별도의 감리비용을 지불하고도 추가 용역이 발생해 건축주의 비용 부담은 더 늘어난다. 반면 설계자가 역량 있는 건축사로 인정될 경우, 허가권자 지정 감리의 예외 신청을 통해 직접 감리를 맡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역량 있는 건축사’라는 제도에 있다.
역량 있는 건축사는 현상 설계공모에서 입상한 건축사에게 10년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도 운영상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현재는 최우수상 이상으로 자격 기준을 바꾸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충분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현상 설계공모에는 오래전부터 부정행위에 대한 문제 의혹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학연·지연을 매개로 한 사전 접촉으로 불투명한 심사 절차가 업계에서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협회나 지역 건축사회에서는 현상 설계공모 방식의 개선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고, 건축사들에게 개별 적으로 심사위원 사전 접촉 금지 참여 동의서를 받기도 했다. 또한, 불과 수년 전에도 당선작이 다른 건축사의 표절 시비로 당선작이 취소된 적도 있다.
결국 검증되지 않은 심사위원들과 불투명한 절차 속에서 선정된 당선작이, ‘역량 있는 건축사’라는 예외적 지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역량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보증되지 않는 실력과 자격자들을 위한 제도가 열려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라면 답은 분명하다. 역량 있는 건축사 제도는 더 이상 존치될 이유가 없다. 실력과 자격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예외 조항을 통해 감리 업무까지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정부, 그리고 협회는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자격이라면 예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결국 또 다른 불신을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