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난 사람들이 부스스한 얼굴로 마을을 거닌다. 식당 청년은 신선한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장으로 떠났고, 카페는 감자 삶는 일로 하루를 연다. 매일 아침의 평화는 11시를 기점으로 부산함으로 바뀐다. 백패커들이 떠난 자리는 쓰레기 줍기로 시작해, 민박의 침구 교체와 청소로 이어진다.
매일 아침의 우리의 패턴이다. 어르신들은 각자의 체력에 맞는 범위에서 청소를 도와주시고, 트럭 뒤에 백패커들을 태워 임도길 초입까지 데려다주시기도 한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마을 회관에서 우리의 점심까지 준비해 주시고, 우리는 가족처럼 식사 자리에 함께한다. 힘들다고 설거지조차 시키신 적은 없었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낯선 중년 부부가 마을로 들어섰다. 분홍신 할머니의 자제분들이라고 했다. 같은 가족이라는 생각에 멀리서부터 인사를 드렸지만, 그들은 그냥 지나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잠시 후 두 분이 나를 찾아와 다짜고짜 화를 내셨다. 왜 순박한 노인네들을 속여 재산을 가로채느냐는 것이다. 자신들이 상속받을 집을 본인 동의 없이 마음대로 활용했다며 변상과 원상 복구를 요구했다.
반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식 된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동의만 받으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가족까지 고려하지 못했다. 내 실수였다.
일단 고개 숙여 사과드렸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기 위해 당산나무 아래 평상으로 모셨지만, 그들은 그냥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일주일 안에 변상 계획을 마련해 연락하라”는 말만 남긴 채.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평상에 앉아 먼 산만 바라보았다.
저녁 무렵, 예비역들이 자신들의 숙소로 나를 불렀다.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늦은 밤까지 내 이야기를 듣고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뚜렷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자식들은 등기상 소유주가 아니다.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거론하는 것이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기로 고발할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찾지 않던 고향이 유명해지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어머니 소유의 집이 민박으로 활용되자 욕심이 생긴 것이다. 2년 가까이 이곳에 머물며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다면, 명절에도 찾지 않던 자식들일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시세보다 더 지불하더라도 사들이는 수밖에. 1.5배를 제시해 다시 매입하고, 협동조합 재산으로 귀속시키는 방법뿐이었다. 다행히 숙소를 제외한 나머지 집들은 이장님 개인 소유였고, 이장님께서도 협동조합 소유로 귀속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협의안을 1.2배로 제시했고, 1.5배 조건으로 합의해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분홍신 할머니는 연신 미안해하셨다. 자식들이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직접 설득해 보겠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내가 할머니를 만류했다.
“이렇게 하시면 일이 금방 끝납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방법을 찾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공동 재산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