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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범위는 누적인가요? 가 영어로 뭐지

by 셀셔스

어학연수만 하는 게 아닌 이상, 대학원을 다니는데 그저 시간이 흘러 영어가 나아질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수업도 알아듣고 과제도 시험도 치고, 교수님들과 연구도 해야 하고, 미팅도 가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한다면 인턴쉽도 해야 하고, 네트워킹도 해야 한다.


첫가을 학기는 앞서 이야기했듯 과제와 눈물과 함께하는 불면의 밤으로 보냈다. 새벽 4시 조성진의 녹턴을 틀고 졸린 눈 비벼가며 공부를 하며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조기 유학 안 보내줬을까” 라며 애꿎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던 공부를 하고, 꿈에 그리던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계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강의를 듣는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다. 무엇보다, 수년간 돈을 버는 직장인이다가 돈을 쓰는 학생이 되었기에 학생으로서 누리는 자유는 달콤했다. (점점 줄어가는 통장 잔고는 쓰라렸지만) 힘들게 온 유학인 만큼 나는 수업도, 네트워킹도 잘하자고 마음먹었다.


근데.. 문제는.. 듣고 말하기가 안 되는데 어떻게...?


우선, 모든 문제의 근원은 “수업을 못 따라간다”였다. 한국에서 나름 한 공부하던 사람이었기에 수업을 못 따라가는 좌절감은 엄청났다.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해 본 방법들을 소개한다.


시도 1: 예습하기

- 영어는 알면 들리고 모르면 안 들린다.


사실 한국어는 몰라도 들리고, 알면 더 잘 들린다. 하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았다. 내용을 알면 들리고 내용을 모르면 마이동풍으로 한 귀를 스쳐 한 귀로 나갈 뿐이다. 또, 미국의 교육은 지식의 전달보다는 질문 위주, 토론 위주 수업이 많다 보니, 지식의 습득은 어느 정도 본인 스스로 채우길 기대한다. 따라서 예습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예습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독학하기였지만, 현실은 과제를 기한에 맞게 내는 것도 버거웠으니 완벽한 예습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목표로 수업 시작 직전에 수업 자료를 가볍게 훑어보기로 바꿨다. 그것만으로도 수업에 대한 이해도는 나아졌다.


시도 2: “시험 범위가 누적인가요?” 가 영어로 뭐지?


미국에 오기 전 뵌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신 선배님께서, “한 수업에 좋은 질문 딱 한 개만 하자”라고 결심하셨다고 하셨다. 나는 좋은 질문 나쁜 질문을 떠나, 영어로 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손을 들어 질문을 하자를 결심했다.


첫 질문을 하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200명 정도가 있는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수업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구글로 한영 검색을 하고, 완결된 영어 문장을 종이에 적어 놓고 마음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입을 열자 목소리가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물어본 질문은

시험 객관식인가요?
(Is the exam multiple choice?)


이런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내 질문에, 예일대를 졸업한 미국인 친구가 "시험 범위가 누적인가요?"라는 질문을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교수님이 (인성이 파탄난 교수님이 아닌 한) 학생이 어설픈 영어로 질문해도 최선을 다해 대답해 준다. 질문이 이해가 안 가면 학생에게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멍청한 질문 하지 마라”라고 할 질문도 “좋은 질문(Great question)"이라며 칭찬해 준다. 주변 학생들도 질문하는 것에 눈치를 주거나 고까워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이기에 한두 번씩 떨림을 이겨내고 질문하다 보면 질문할 때의 심박수가 점차 낮아진다.



시도 3: 이메일 활용하기

-한국에 카톡이 있다면 미국엔 이메일이 있다.


시험 유형 물어보기와 같은 단순한 질문들도 이렇게 떨리는데, 수업 내용에 대한 고차원적인 질문은 당연히 하고 싶어도 말을 못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영어 읽기는 10년 넘게 교육을 잘 받았고, 영어 글쓰기는 구글과 파파고 (이제는 챗GPT)가 있다.


미국 유학 생활의 90프로는 이메일 쓰기와 이메일 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아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한다. 일반적으로는 전화도 이메일로 약속을 잡고 한다. 또한 직접 만나는 약속도 이메일로 일정을 잡는다.


미국의 이메일 문화가 나에게 참 다행인 게, 이메일은 말과 달리 영어로 글을 쓰고 고칠 시간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수업 내용 관련한 심도 있는 질문이은 이메일로 교수나 수업 조교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같이 일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이메일을 보냈고 덕분에 여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Tip: 강의 내용 녹음하기

처음에 강의를 못 알아들으면 하는 생각이 “이걸 녹음해서 다시 들어야겠다”입니다. 원칙적으로는 교수님께 허락을 받고 녹음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제가 다닌 학교는 코로나로 인해 거의 모든 강의에서 녹화본(리코딩)을 온라인으로 제공해서, 사실 녹음을 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리코딩이 제공되어도, 실질적으로 다시 볼 시간적, 심적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경우엔 영상을 다시 보거나 녹음을 다시 듣기보다는, 차라리 예습을 하고 수업을 똑바로 듣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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