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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스피킹이 아니었다.

by 셀셔스

덥지만 하늘은 맑았던 8월 중순의 어느 날. 인천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설렘반 두려움 반으로 몸을 실었다. 큰 캐리어 1개와, 이민가방 1개, 어깨가 끊어질 듯 무거운 배낭. 미국에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직항은 비싸서, LA를 경유해 보스턴 로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어디서 미국에 가면 택시 대신 우버를 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헤매고 헤매서 우버 기사를 만났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기숙사 사감을 만나 열쇠와 학생증을 수령했다. 집을 떠난지 만 24시간만에 파김치가 된 채로, 70년 가까이 된 기숙사 건물의 4층 1호 A방에 도착했다. B방에는 룸메이트가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 날이 살면서 처음으로 미국인과 대화한 날이다.


미국에 도착한 날부터 문제는 다들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말하기가 아니었다.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스피킹 공부한 것은 당췌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눈치보기에만 바빴다.


또, 다른 문제는 각양 각색의 억양. 우리는 한국에서 전형적인 북미 영어 억양 (주로 백인)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각국에서 온 억양들은 영어 듣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영국 억양, 히스패닉 억양, 남부 흑인 억양, 중국 억양....


친구들과의 친해지는 것이나 일상 생활은 차치하고, 가장 큰 어려움은 수업을 알아 듣는 것이었다. 8월 말 개강하고 처음 들었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강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과제가 뭔지, 시험은 어떻게 보는지,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수업 내용도 이해가 안 갔다.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니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영어를 못하고 유학오면 생기는 악순환의 굴레.



특히, 우리 과는 과제가 정말 많았다. 잠도 못 자고 과제를 해가도 또 다른 과제가 밀려있고... 이 때문에

하루에 3-4시간 정도 밖에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과제를 하다가 잠깐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과제를 했다. 수업을 따라 잡지 못 하니, 과제 점수도, 시험 점수도 잘 안 나왔다. 그리고 나는 잠도 못 자면서 공부를 해도 성과가 안 좋은데,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은 공부도 잘 하면서 놀기까지 하는 걸 보고, 친구들과 나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심지어 하루종일 말할 기회가 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니, 사실 영어 실력이 늘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2-3달을 보내고 나면, 처음에는 신기했던 미국 생활도 적응이 되고, 미국 생활의 싫은 점만 보이기 시작한다. 건물을 왜 이리 낡았고, 밥도 맛 없고 비싸고, 친구도 가족도 없고, 공부도 외국어로 하니 잘 안되고, 학교 문화도 익숙하지 않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자고 남의 나라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라는 현타가 오는 시기이다. 즉, 향수병이 찾아온다. 가뜩이나 미국 북동부의 날씨는 이 맘때 계절도 추워지고 해도 짧아지니 더욱 더 서러워진다..


혹시 이 모든 과정을 똑같이 겪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나는 잘하고 계신 것이라고 믿는다. 영어 듣기가 점차 편해지는 데에는 3개월 - 6개월이 걸리는 것 같다. 이 고비만 넘기면 어느새 귀도 조금씩 트이고, 더불어 더듬더듬 문법은 틀려도 하고 싶은 말을 조금씩 하게 되고, 수업 시간에 질문 하는 것도,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마트에서 장 보는 것도,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


물론, 영어 기본 베이스나 언어 감각에 따라 개인마다 편차가 클 것이고, 이 시기가 지난다고 영어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온 지 2년여가 되어 가지만 여전히 못 알아 듣는 경우도 허다 하고 , 전화 받는 것은 여전히 두려우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의 20프로도 못한다. 영어의 어려움은 나에게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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