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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오면 도대체 어떻게 영어가 느는 것인가?

미국 유학 VS 미국 취직 케이스 비교 분석

by 셀셔스

나는 석사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 부속의 한 연구 기관에 취직했다. 하버드와 MIT는 전 세계에서 온 어마어마하게 많은 포닥(포스트 닥터, 박사후 과정)들이 있기에, 좀 과장을 보태면 보스턴 인구의 대다수가 포닥이 아닐까 할 정도다. 내가 일하는 곳도 세계 각국에서 온 포닥들과 함께 일을 한다. 그 중 우리나라 바로 이웃 섬나라인 J국에서 온 사람도 있다.


J국과 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영어 교육 시스템이 매우 비슷하며, 발음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고생한다. J국에서 온 포닥 A 역시 영어로 인해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A는 쭈욱 자기 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최근에 미국에 온 케이스다. 특히 포닥들은 늘 팀원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옆에서 보면 A의 영어는 안쓰러울 정도다. 발표 시에는 스크립트를 써놓고 줄줄 읽는다. 실제 대화에서는 한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야 한다. 유학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간 내 경우에는 여전히 영어로 발표하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스크립트를 써놓고 읽지는 않고 키워드 위주로 적어놓고 그 자리에서 어느 정도 문장을 만들어 내서 말을 할 수 있다. 내 영어 실력이 뛰어난 편이 아닌데도, A는 나를 늘 부러워한다.


신기한 점은 A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왔다. 사실, A가 나보다 반년정도 빨리 미국에 왔다. A와 제가 어떡하다가 지금 이렇게 영어 실력에 있어서 차이가 나게 됐는지 분석을 해봤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영어의 노출 빈도일 것이다.


유학을 와서 학교 생활을 하게 되면 반강제로 영어로 된 수업을 들어야 한다. 강의가 하루에 1개 있다면 적어도 두 시간은 영어로 하는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즉, 입력(input)의 과정이 생긴다. 하루에 두 시간만 수업을 듣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출 시간은 실질적으로는 더 많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생기는데, 한국인하고만 노는 것이 아니라면, 친구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걸 지속적으로 듣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인풋이 한번 더 생긴다.


그리고 학교에서 발표도 하고, 미팅도 해야 하기 때문에 출력(output) 연습을 하게 된다. 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조별과제 발표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 전날 스크립트를 써놓고 문장 자체를 암기를 했다. 즉 처음에는 한국어 문장을 먼저 생각하고 영어로 이를 머릿속에서 번역하여 말을 한다. 보통 'Hi'를 머릿속으로 번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너는 내가 그걸 널 위해 해 주면 좋겠어? (Do you want me to do it for you?)' 같이 길거나 복잡한 문장은 한국어로 먼저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인풋과 아웃풋이 반복되다 보면 보면, 문법은 틀리고 설령 단순 단어라고 할지라도 영어 단어를 먼저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점차 한영 번역의 경우보다 영어 문장을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진다.


한편, 포닥 A의 경우, 하루종일 영어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본인 일을 하다가 간간히 사람들과 간결한 대화를 하고, 웬만한 의사소통은 이메일로 가능하기 때문에, 영어 노출 빈도가 나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또 직장 생활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아서, 직장 동료는 직장 동료일 뿐 친구가 아니다. 즉 가장 중요한 인풋의 양이 적어서 영어가 느는 속도가 나보다 느리게 된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끝으로, A에게 자국에서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마흔 가까이 되어 낯선 나라에 와서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 영어로 소통하는 게 정말 힘들지만, 미국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없고, 이건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연구야."


그의 더듬거리는 영어는 그의 꿈과 열정 앞에서 더이상 중요치 않아보였다. 꿈을 향해 멋진 도전을 하고 있는 A는 그 순간 정말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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