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다이어리

닭갈비

by 아름다운 그레이

딱히 계획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늦잠이랄 것도 없이 평소처럼 일어나 아침을 먹고 식탁에 앉아 멍하니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일어나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갑자기 쌀쌀하다 못해 추워진 날씨에 선뜻 집 밖을 나서기가 쉽지 않았기에 오늘의 일과에 대해서 남편에게 단호히 말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주말이니까 킥보드를 타러 가든지 아니면 근처 도서관을 가자고 무심코 흘려 말했을 뿐이었다. 외출을 하되 목적지는 정확히 정해놓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내내, 흘린 음식물을 치우며 베란다에 잠깐씩 나갈 때마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내 생각은 차츰 야외에 가는 것보다는 따뜻한 도서관에 가서 한두 시간이라도 책을 보는 것이 낫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게다가 오늘은 이틀 전부터 남편과 약속해 두었던 닭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 아닌가. 이 약속 때문에 별다를 것 없는 토요일을 내내 기다려왔다. 편식이 심한 내 입맛에 먹고 싶은 음식을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고 남편이 먼저 제안한 일이라 고맙기까지 했다. 그 사람은 닭갈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심한 사람이 순전히 나를 위해 맛집에 갈 것을 제안하다니 놀랍고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더 공들여 화장을 해야겠다고 미리 마음먹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하는 남편 동반 외식에 나는 일부러 공들여 화장을 한다. 전업주부인 나는 아침, 저녁으로 거의 맨얼굴로 남편을 마주하기 때문에 내 화장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같이 화장을 하는 날엔 늘 보는 남편이라도 예쁘게 보였으면 하는 사춘기 소녀 같은 마음도 있다. 화장이라 해봤자 평소보다 더 꼼꼼히 선크림을 바르고, 더 정성 들여 눈썹을 그리는 것뿐이지만 나를 위해 공들이는 이 시간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닭갈비를 먹으면 립스틱은 지워질 테니 옅은 색으로 바를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아이들 노는 소리 저너머로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화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대화는 꽤 길어져서 내가 화장을 끝내고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끓이고 있을 때까지도 이어졌다. 언제나 전화통화를 하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때가 많은 남편이라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과 먼저 라면을 먹고 있는데 통화를 끝낸 남편이 젓가락을 들자마자 산통 깨는 소리를 한다.

"나 오늘 어딜 좀 다녀와야겠는데? 닭갈비는 내일 먹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즐거웠던 내 감정선은 맥없이 툭 끊어져서 너덜너덜 바람에 흩날리는 종잇장같이 흔들거렸다. 이해해보자고 맘먹었다가도 가족과의 약속은 이렇게 쉽게 미루는 건가 싶어서 버럭 신경질이 치밀어 올랐다.

"내가 돈 벌어올게. 그럼 됐지?"

그 말을 하는 남편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 얼굴에서는 분노와 실망감 외에는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오늘 우리가 가기로 했던 그 닭갈비집은 오늘도 거기 그대로 있고, 내일도 거기 그대로 있겠지만 나는 이틀 전부터 오늘을 기다려왔다. 나만 좋아하고 남편과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단 이유로 결혼 후부터 몇 년 동안 먹기를 시도하지 않았던 그 음식을, 그 사소한 음식을 이토록 마음 가득히 기다려 왔던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다는데 그래서 집에 처박혀 티브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서인지 내일 나가자는 그 말에 짜증이 덜컥 나는 내가 우스웠다. 왜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 화가 나는가. 어떤 맛일지 기다렸던 나의 이틀과 행복하게 화장했던 나의 삼십 분을 남편이 너무 쉽게 밀쳐놓는 모습에 화가 났을까. 구하기 어려운 음식도 아닌데 좋아하는 음식임에도 그동안 남는 게 싫어서, 혼자 먹기 싫어서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했던 내가 멍청하게 보여서였을까. 나는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닭갈비집에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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