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갑자기 무료해질 때가 있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예고도 없이 불쑥. 아이들을 보내고 조용히 티브이를 보는 내 모습이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몇 시간의 자유지만 갑자기 이런 소중한 자유를 의미도 없이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순간 덮쳐오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애써 떨쳐내곤 했다.
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왔다. 칠순이 가까운 연세에 과수원 일을 둘이서 해내시느라 얼굴이 안 좋으신 게 보인다. 고생하시는 부모님 앞에 서면 나는 항상 죄인이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고 일단 아껴두었다가 몰래 내게 건네주는 엄마와 두 손녀 보는 낙으로 사시는 우리 아빠. 부모님 앞에서는 잘난 게 하나도 없는 내가, 매번 부모님께 신세만 지는 내가 몸서리치게 싫지만 나는 항상 그 자리다. 두 아이를 키우는 크나큰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나는 항상 죄인인 느낌일까. 다정한 남편과 토끼 같은 딸들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일상의 한 부분일 뿐 나에게도 다른 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멋진 엄마, 부모님께는 뒤늦은 효도가 될 것만 같아서다. 그리고 나 같은 못난 사람도 많이 늦었지만 해냈다는 걸 느끼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예전에도 두 번이나 낙방했던 시험이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책을 모두 버렸었는데 역시나 인생은 장담하면 벌을 받는다.
공부하겠답시고 작년 12월에 첫 아이를 낳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친하게 지내 온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들과의 수다시간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시간도 모두 다 뒤로 미루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내 모든 일상을 포기한 채 시간과 돈과 체력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들고 지루하다.
아이들 케어하고 남편 저녁 차려 주는 서너 시간과 세시 세끼 먹는 시간 빼고는 습관처럼 책상에 앉는 일은 참 고된 노동과도 같다. 게다가 나는 마흔을 넘었다. 나이 탓은 하기 싫지만 객관적으로 체력은 이미 20대의 절반도 못 따라간다. 저녁쯤엔 꼬리뼈가 아파서 앉아있기도 힘들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아이들과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일도 이번 주부턴 못 할 것 같다고 말해놓고 나니 마음이 더 헛헛하고 씁쓸하다. 죄 없는 아이들까지 희생하게 해 놓고서 시험에 떨어지면 그 무참한 마음을 어찌 혼자 감당할까.
내가 합격하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겠다는 엄마. 나를 위해서는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엄마인 걸 알기에 어쩌면 유독 내 꿈이 더 절실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내 꿈은 로또가 아니라 나의 합격이다.
하아....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
싱숭생숭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