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다이어리

이해할 수 없다는 것

by 아름다운 그레이

2년 만에 시아버님을 만나러 갔다.

코로나 시대.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시대에 언제까지 자식 된 도리(?)를 미룰 수가 없어서 길은 나섰다.

불안한 징조는 날씨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요일이었고 날씨는 부슬비, 뿌옇고 흐린 하늘은 집에서 짜장면이나 시켜 먹으며 쉬는 게 최고의 하루가 될 만했다. 날씨를 보는 순간부터 사실 나가고 싶은 맘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2년 만에 만난 시아버님이라지만 나는 아무런 정이 없다.

7년 전 둘째를 가졌을 때 심한 입덧으로 몸무게는 50kg 언저리를 밑돌고 있었고 남편은 주말이고 휴일이고 밤 열두 시, 새벽 한 시 귀가가 기본이었으므로 얼굴 보기 힘들었고 혼자서 세 살 된 큰아이를 보고 있었다. 친구도, 친정도 없는 외딴 지역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러나 그때는 시부모님이 이혼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나로서는 며느리 도리를 해야지 싶어 석 달 내내 주말마다 청소하고 밥해드리고 집 정리를 해드렸다. 그러던 7월 한여름의 어느 날 무더위에 흐르는 땀을 참아가며 청소기를 돌려놓고 대걸레로 거실을 밀고 있었다. 세 살 된 큰아이는 방치되다시피 혼자 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님을 보니 거실 벽에 기대앉아 두 다리를 펴서 포갠 채로 핸드폰만 보고 계시는 게 아닌가. 내가 대걸레로 시아버님의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밀고 있는 동안 아버님은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셨다. 그동안에도 자주 있었던 일인데 그날따라 내가 며느리가 아닌 무임금의 가사도우미가 된 느낌이 들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아버님은 하루에 한두 갑씩 담배를 피우시는데 항상 드시던 커피잔에 가래와 담뱃재, 담배꽁초를 모으는 고약한 습관이 있다. 입덧까지 겹쳐 괴로웠지만 구역질을 참아가며 커피잔을 비우면서도 당연히 내가 도와드려야지 하며 겨우 참아왔는데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말마다 쓰레기장 같은 이 집에서 반나절을 방치된 나의 딸과 뱃속에 있는 나의 둘째 아이보다 더 중요한 게 이런 것인가.

나를 며느리 대접하지 않는 어른께 나도 시아버지 대접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다짐한 그날부터 나는 시아버님에 대한 정을 거두었다.

그런 시아버지를 2년 만에 만났다.


심하게 낯가리는 나의 딸들은 몇 번 만나지도 못한 할아버지를 반길 리가 없었고 철저한 가부장 시대를 살아오신 시아버님은 그때부터 기분이 상하신 듯 차에 타자마자 훈계를 시작하신다. 석 달 전 결혼한 사촌 시동생을 보러 가라고 했으면 너라도 갔어야지 왜 안 갔느냐고 타박을 하신다. (남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못 갔는데) 그 타박에 나는 성의 없게 한마디 대답했다.

"언젠가는 가겠죠."

고분고분해야 할 며느리가 자꾸 말대답을 하니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하셨을 터.


점심을 위해 도착한 식당은 대기줄이 길었다.

사달은 여기서 일어났다.

올해 열 살 된 큰 아이는 죽어도 할아버지 옆에 앉기는 싫은지 아이들 아빠가 억지로 앉히려고 해도 자꾸 몸을 비틀며 내뺀다. 그 모습을 보고 계시던 시아버님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아이한테 하는 말.


"어허! 어디서 다 커가지고 응석을 부리고 난리냐! 받아주는 것도 한도가 있는 것이제!"


정말 이상하다. 내 자식을 내가 혼낼 땐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혼내면 기분이 안 좋다. 게다가 한 때는 그 아이 앞에서 '에쎄 수 0.1'을 줄기차게 피워대던 분이...

조용히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내 말 한마디로 일이 커졌다.

"아버님. 자식 교육이 어디 마음대로 돼요? 아버님도 아들 키워보셨으면서 그러세요. "

"참나. 그걸 왜 나하고 비교를 하냐. 내 세대를 안 살아봤으면 너희는 죽어도 나를 이해 못 해. 그리고 우리 아들은 말 잘 들었어."

"그건 아버님 생각이시죠. 아들 말도 들어봐야죠. 아들은 가슴에 맺힌 게 많을걸요?"

"아니, 뭔 말이여 그게. 나한테 맺힌 게 뭐가 있어? 나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다. 야! 나 갈란다!"


그러고는 그대로 일어나 자리를 떠나버리셨다. 우리는 결국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시아버님은 모른다. 부모의 두 번째 이혼으로 외로웠던 유년시절과 나와 결혼하기 직전까지 술만 마셨다 하면 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을 참아야 했던 남편은 순종적 성격이라 비극을 혼자 감내했던 것뿐 결혼 후 지금까지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아버님은 모른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난 아버님을 나는 다가가 붙잡지 않았다.


아버님. 묻고 싶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입니까.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존경받기를 원하십니까.

멀고 먼 친인척의 대소사는 다 챙기시면서 왜 아들 가슴에 난 생채기는 모르는 척하시는지요.

아버님의 며느리는 아버님 집안에 희생하러 온 여자가 아닙니다. 결혼 직후 전화하셔서 친정에 자주 가지 말라던 그 말씀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런 아버님이 어쩐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아버님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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