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다이어리

혀 밑의 도끼

by 아름다운 그레이

나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지만 내 아이가 그리 예쁜 편에 속하는 얼굴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소위 말하는 방울 같은 커다란 눈망울에 우유같이 흰 피부를 가진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예쁜 얼굴이 아니므로 자꾸 눈이 가는 예쁜 얼굴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내가 자발적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입에서 들으면 딱히 기분이 좋을 것도 없다.


나는 시어머니가 둘이다. 한 분은 낳아주신 분, 그리고 한 분은 30여 년을 키워주신 분. 내가 '서울 어머님 '이라 칭하는 남편의 친어머니는 지금껏 서너 번 만나 짧게 이야기 나눈 게 전부였다. 남편은 불안하고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철이 들었을 즈음 자기를 두고 집을 나간 어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친어머니를 먼저 찾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봄 아주 오랜만에 서울 어머님이 만나자며 연락을 해오셨다. 어머님은 새로운 분을 만나 가정을 꾸리시고 사셨는데 그분을 소개해 주고 싶다는 명분이었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시아버지도 두 명인 것이다.

약속 당일 만나기로 한 장소는 남쪽 섬의 어느 조개구이집이었다. 꽤 오래간만에 만나는 자리였던지라 사실 어머님의 얼굴이 가물거렸지만 막상 마주친 어머님은 말문이 턱 막히는 얼굴이셨다. 눈가 주름을 없애고 싶었다며 무슨 시술을 받으셨다는데 눈이 반듯한 일 자가 아니라 감나무 꼭대기 홍시 매달리듯 위로 한껏 치솟아 어색하기가 영 말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머리 모양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나 한다는 '똑 단발'을 해서는 칠흑같이 까만색으로 염색을 해서 도대체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민망한 웃음만 슬슬 짓다 내가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사람은 공기를 타고 흐르는 정적과 미세한 표정, 감추려는 듯 애써 꾸미는 동작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허름한 조개구이집, 지루한 드라마가 소음으로 맴도는 티브이, 쓸데없이 크기만 한 벽거울 그 사이로 조개구이집 주인 아주머니는 손님뿐이라고는 우리들 뿐인 식당 홀에서 단 한순간도 우리 테이블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앉은자리는 티브이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둥그런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있지만 사이는 둥그렇지 않고 다 엇나가 있으니 분위기가 평범한 가족이 아님은 당연했다. 나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시아버지에 남편 역시도 생전 처음 보는 두 번째 아버지였으니... 교집합이라고는 까만 똑 단발에 끊임없이 혼자 이야기를 늘어놓는 시어머님의 존재 하나였다. 우리는 쌓아온 추억이 없는 만큼 대화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는 결국에는 하지 말아야 할 말도 공중에 뿌려대기 시작했다


"아들아. 너 돈 많이 벌어야겠다. 니 아이들 견적 장난 아니겠어. 그렇지 자기야? 쟤들 눈이랑 코는 무조건 해야 돼."

나의 두 아이들은 어느새 성형외과의 잠정적인 고객이 되어있었고 '못생긴 아이들' 취급을 받고 있었다. 꼭 그 말을 하셔야 했을까. 그것도 아이들이 듣는 바로 앞에서 아무런 웃음기 없이. 아이들은 천진한 얼굴 속에도 눈치는 이미 어른이라 무심코 뱉은 말도 모조리 기억한다.

오래간만에 가슴속에 차가운 바람이 쓱 들어오는 듯하여 분노보다는 오히려 차분함이 감정을 채웠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 다른 이에게 도끼질을 해왔을까. 그날의 시어머니 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내가 하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혀 밑의 도끼'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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