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다이어리

하이힐

by 아름다운 그레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진한 향수, 무거운 가죽 가방, 짧은 바지, 타이트한 옷, 기름진 음식 등과 같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익숙한 것들이 어느 순간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취향이 변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순전히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움이 큰 탓일 때가 많다.


얼굴도 모르는 6촌 친척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일상에 새로운 일이 없던 나는 결혼식조차 두근대는 외출이었다. 옷은 무엇을 입을지, 신발은 무엇을 신고 갈지 일주일 전부터 고민에 빠졌다. 특히 가난한 나의 신발장을 보고 나니 더욱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운동화 같은 편한 신발 외에는 신어본 날이 드물었기에 당연히 예쁜 구두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신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켤레뿐이었다. 굽 낮은 단화와 친구가 준 7센티 굽의 하이힐.

굽이 1센티밖에 안 되는 낮은 단화는 내 나이대만이 신을 수 있을만한 신발이라기보다는 연세 지긋하신 멋쟁이 할머니의 봄나들이용 신발이라고 해야 맞을법한 디자인이었는데 무려 만 이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홀려 충동구매를 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남편과 아이들은 야유를 보냈던 그 신발을 나는 개의치 않고 작년 늦가을쯤 친구의 결혼식에 당당하게 신고 갔었던 게 생각이 난다. 그러나 나의 어떤 마음이 이 신발에 대한 애정을 식게 한 건지 다시 이 신발을 신고 결혼식장에 갈 것을 생각하니 어딘가 망설여져 조심히 넣어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굽 7센티의 하이힐이었는데 이 구두는 내 기준엔 굽이 높은 편이어서 그동안 신발장 구석에서 빛을 못 본 편인 데다 친구가 샀다가 맞지 않다는 핑계로 나에게 준 것인지라 사실 내 발에도 그다지 편하게 맞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제골기였다. 요즘은 하루 만에 오는 배송이 있어서 생활이 편리해진 덕에 이번엔 나도 그 덕을 보기로 했다. 육천 원을 주고 산 제골기를 하이힐에 정성스레 밀어 넣고 구두가 늘어나기를 기다렸다. 정성이 통했는지 구두는 갸륵하게도 미세하게나마 늘어났다.

몇 년 만에 신는 하이힐인가. 느낌이 새로웠다. 키도 커지고 비율도 좋아 보이게 하는 마법의 신발 하이힐. 지금 나는 하이힐을 신은 게 아니라 뿌듯함을 신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고통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나는 발등이 두껍고 엄지발가락이 큰 편인 데다 엄지발톱은 살짝 들려있어서 앞코가 좁고 뾰족한 하이힐 종류에는 어울리지 않은 발 모양 임이 그제야 서서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칼발'이 아니라 그야말로 '곰발'인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지하주차장까지 왔을 때쯤 나의 발가락은 하이힐의 경사까지 겹쳐 구두 앞코에서 맹렬히 구겨지고 짓눌리고 있었다. 예감이 안 좋았다. 돌아가서 굽 낮은 단화로 갈아 신고 올까 하는 고민은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예식 시간에 늦겠다며 이미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역시나 어긋나지 않는 법인가. 여러 친척 어른들께 일일이 인사를 하고 다니는 것도, 소변이 마렵다는 아이들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예식이 진행되는 사십여분의 시간 동안 앉아있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뷔페도 미련이 없었다. 심지어 삼겹살 구이가 더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도 음식을 가져다줄 수 없었다. 겨우 발가락을 하이힐에서 꺼내 쉬고 있는 나에게 한 번 더 하이힐을 신고 음식을 가지러 간다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발뒤꿈치와 발가락 어디선가 고통이 밀려왔다. 차라리 맨발로 다니고 싶었다. 살을 째는 듯한 고통을 참아서인지 어깨와 허리 통증, 두통까지 생겨 걷기도 힘든 지경으로 집에 돌아왔다. 신경질적으로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발 상태를 보았다. 괴로웠다. 전신 거울에 비친 하이힐 신은 나를 보며 행복해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신발을 신고 출퇴근을 했던 걸까. 아이를 키우면서 나에게 하이힐은 언제부턴가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아무 때나 신을 수 없고 특별한 날에만 신을 수 있는 신발이 된 것이다. 마치 보석함 안에서 빛나고 있는 투박한 결혼반지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오늘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예뻐도 나에게는 필요 없는 게 있듯 하이힐은 이제 내 남은 인생에서 영원히 없어질 물건 추가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들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갈리는 것이 어쩌면 나이 드는 과정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의 노화를 아주 사소한 곳에서 마주한 오늘. 그러나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다. 조금은 서글플지라도 아쉽지는 않다. 나는 이제 뾰족하고 콧대 높은 하이힐보다 푸근하고 담백한 멋쟁이 할머니 단화가 좋다.


잘 가라 하이힐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흐린 날의 다이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