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있었다.
'여드름은 청춘의 꽃이다'
순전히 거짓말이다. 여드름은 악마의 저주요, 삶을 갉아먹는 좀과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 삶의 기저에는 약간의 우울함이 항상 똬리를 틀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원인은 여드름의 몫이 크다.
중학교에 갓 입학하자마자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여드름은 하필 그 존재감이 코에서부터 빛나기 시작했는데 크기는 녹두알보다 작았지만 시뻘겋게 부어서 누가 봐도 코에 시선이 모아질 정도였다. 복숭아 껍질처럼 보드라워야 할 사춘기 소녀의 피부는 열네 살 이후 16년 동안 단 하루도 매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나는 보드라운 피부의 감촉을 잊고 살았다. 세수를 하면 거칠거칠한 피부의 질감이 그대로 손바닥에 전달되어 울컥한 마음에 눈물 섞인 세수를 했던 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오돌토돌 잔뜩 성이 난 여드름의 맹공격에 나는 절망에 빠진 날이 많았다.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목적으로 비싼 화장품도 써보고, 밀가루나 간식도 끊어보고, 피부과에서 약도 먹어보고, 유명한 한의원에서 한약도 한 재 지어서 먹어보았지만 결과는 다 무용지물이었다. 한 번은 지인의 소개로 꽤 유명하다는 피부과에서 연고를 처방받아 발라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부작용으로 얼굴과 온몸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홍반이 일어난 것이다. 새로운 직장으로의 출근을 3일 앞둔 날이었다. 엄마는 내 어깨를 붙들고 흐느껴 우셨다. 우리 모녀는 똑같이 여드름의 피해자였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성게처럼 온 얼굴이 오돌토돌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모녀는 애써 말하지 않아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창 아름다울 이십 대에 더욱더 기세 등등한 나의 여드름 때문에 나는 화장에 공들이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고 대신에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점점 줄었다. 협소한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사람을 마주쳐도 잠깐 고개 숙여 인사할 뿐이었고 긴 대화에도 어쩌다 한번 예의상 눈을 마주치는 게 전부였다. 여드름은 내 일상마저 조금씩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 최고의 칭찬은 피부가 좋아진 것 같다는 그 한마디였다. 그런 말을 들은 날엔 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이 여드름 때문에 연애는커녕 결혼도 못하고 평생 혼자 살 게 될 것이라 장담하고 매사에 체념을 먼저 배우며 삶이 주는 재미를 잃어갔다. 그러나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옛말처럼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의 여드름 투성이 얼굴을 조금 안타까워할 뿐 신기해하거나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처음 만난 후 내 피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최초의 남자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드름과의 전쟁도 임신과 함께 조용히 끝이 났다. 인체의 신비가 아닐까 싶다. 호르몬의 작용인지 임신을 하자마자 여드름이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마침내는 사십 대가 된 지금까지도 여드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는 삶이다. 비록 치열한 여드름과의 전쟁이 남긴 흉터나 넓은 모공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나는 더 이상 피부과에 가거나 비싼 화장품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아이들에게서 여드름이 솟아난 걸 보게 된다면 나는 아마 비명을 지르며 절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드름의 유전이 나에게 지옥과도 같은 멍에일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전쟁을 임하는 전사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또다시 이것저것 시도해보길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행여라도 여드름이 난 누군가를 보더라도 귀엽다는 둥, 나중에 다 없어진다는 둥 하는 무심한 말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여드름은 절대 '꽃'으로 포장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