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가 싫다. 종교적인 이유도 아니고 채식주의자도 아니지만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지 않으니 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시도했어도 간을 볼 수가 없다. 그 외의 다른 요리 역시 잘하지도 못하지만 관심도 없다. 잘하질 못해서 관심이 없는 건지, 관심이 없어서 잘하질 못하는 건지 아직도 인과관계를 정할 수가 없다. 어쨌든 간에 앞으로도 나의 요리 실력은 도무지 늘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그리 운 좋은 일은 아니다. 한 번은 궁중 떡볶이에 도전한 적이 있었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정성은 아주 갸륵하였으나 결과물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떡볶이의 색깔이었다. 만든 내가 아이들 앞에서 맛없다고 인상 쓰면 덩달아 안 먹을까 봐 일부러 과장스럽게 맛있는 척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따라먹기 시작했는데 정직한 나의 아이들은 뜨뜻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궁중 떡볶이가 느끼한 음식은 결코 아닌데 결국 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최악의 그 떡볶이를 두 개인가 집어먹고는 미련 없이 치워버린 뒤 마트에서 사 온 조미김에다 흰밥을 싸서 아주 맛있게 저녁을 때웠다. 열심히 준비해서 결국은 간단하게 버려지고 마는 한심한 음식들이 늘어가며 어느새 나는 요리가 너무 싫은 주부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대상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는데 집밥을 유독 좋아하는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저절로 한숨을 쉬게 된다. 남편은 일단 냉장고에 들어갔다 다시 데운 국이나 찌개는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어느 날인가는 요리가 마치 소꿉놀이라도 되는지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딱 한 끼 먹을 정도로만 조금씩 끓이면 좋지 않겠어?"
그 말인즉슨 날마다 다른 국을 끓이라는 에두른 표현이 아닌가. 요리가 그렇게 간단한 일이던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남편은 결혼 후 지금까지 내가 시도했던 수많은 음식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항상 '먹을만하다'가 전부인 이상하게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다. 이쯤 되니 나는 그를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도 시나브로 없어진 것이다.
어느 여배우가 티브이에 나와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 고등학교 때였어요. 제가 반찬투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본 저희 엄마가 요리하던 걸 멈추시고 한숨을 크게 쉬면서 이러시는 거예요. 나는 내가 요리를 왜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그 말 듣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반찬투정 한번 해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이 얼마나 내 가슴에 와닿았는지 나는 한동안 티브이 앞에 서서 천천히 되새김질해보았다. 왜 주부는 요리를 잘해야 하는가. 그리고는 이내 아이들을 비롯해 남편에게 가졌던 죄책감을 덜어내기로 결심했다. 요리를 잘해야 하는 게 주부의 의무는 아니지 않은가.
다만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