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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Mar 18. 2024

여행지에서 '질문하는 법'

구글맵에 낭만을 더하면 여행의 캐릭터가 생긴다.

빛나는 날씨에 제대로 여유로운 코펜하겐의 토요일. 

택시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눈에 담기에 바빴다.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하는 윤슬이 반짝였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줄지어 가거나 여유롭게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날씨가 정말 환상적이었던 9월 코펜하겐

호텔에서 약 15분쯤 달렸을까, 목적지에 다 와 가고 있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도착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묵을 '빌라 코펜하겐' 바로 맞은편에 그 유명한 '티볼리' 놀이공원이기 때문이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즐거운 외침과 음악, 화려한 조경이 놀이공원 울타리 밖으로 넘쳐흘렀다. 

티볼리를 엿보며 셔터를 몇 번 누르자 곧 도착한 '빌라 코펜하겐'.

붉은 벽돌과 네이비 컬러 지붕에 반듯한 네모 건물이 내 앞에 우뚝 서있었다. 

그리고 15분 거리에 내가 지불한 택시비는 약 6만 원. 덴마크 물가를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중앙영과 티볼리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이 호텔은 원래 중앙우체국 건물이었다. 

1912년에 지어진 건물을 개조했으며, 주얼리 브랜드에서 맡은 브랜딩, 지속가능한 호텔 운영방식 등 나에게 이 호텔은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은 로망이었다. 

그리고 그 로망의 정점에 있는 호텔 수영장과 사우나. 오랫동안 선망하던 대상을 찾아가듯 나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호텔로 들어섰다. 



여행 첫날, 다음 여행을 마음먹었다.

빌라 코펜하겐 로비


단언컨대, 나는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호텔 로비를 본 적이 없다. 

천장 유리로 자연광이 가득 들어오면서 캐주얼한 럭셔리가 느껴지는 로비는 이미 사진으로 보고 갔지만 그 아래에 서 있는 느낌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나는 이 처음 느끼는 감정에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나 여기 또 와야겠다. 오빠도 보여줘야겠다'. 그렇게 다음 여행을 마음먹었다. 

로비의 체크인 카운터와 빌라 코펜하겐의 나무 카드키

여기서 호텔에 관한 몇 가지 정보.

'빌라 코펜하겐'은 Design&Sustainable을 추구한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것 에서부터 세부적인 것들까지 신경 쓴 점이 이 호텔을 '럭셔리'라고 부를 수 있는 듯하다. 그들의 지속가능성은 사실 호텔에서 가장 제일 먼저 만나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로컬 지속가능 패션 브랜드의 유니폼인데, 심지어 몇 가지 스타일 중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친절함이란

친절하되 부담스럽지는 않게. 이 얼마나 고도의 세심함과 센스를 요하는 것인지는 사회생활을 통해 경험해 왔다. 그리고 딱 그 적절한 온도를 코펜하겐 로비에서 느꼈다. 

예약확인과 오늘 저녁에 올 캐리어를 받아달라는 요청을 위해 체크인 데스크에 섰다. 

나를 담당하게 될 직원과 인사 나눈 뒤 예약을 확인했고, 전달사항도 모두 전했다. 스페인에서 왔다는 그녀는 과하지 않게 안부를 묻고, 내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캐리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코펜하겐 여행 첫날을 축하해주고 싶다며 얼리체크인을 무료로 해주었다. 나에겐 얼마나 단비 같은 행운이었는지! 짐이 많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안전한 내 공간을 빨리 가지고 싶었다. 

로비(Courtyard)에서 객실로 향하는 복도

그녀는 로비에서부터 호텔 방까지 안내해 주며 주요 시설을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건넨 신선한 질문. '이 호텔에서 어떤 경험이 가장 기대가 되나요?' 호텔에서는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다. '데니쉬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음식과 예술, 전형적인 부분들까지 가능한 다양하게요!'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가 명확했던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후 기본적인 호텔 안내 이외에 그녀는 이 호텔의 자연광이 가장 예쁜 시간과 장소, 층별로 다른 복도 쉼터의 디자인, 호텔에서 제공하는 데니쉬 스타일의 서비스, 호텔 내 텃밭 등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며 방으로 향했다.


여기서 나는 '여행에서 질문하는 법'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여행에서 우리가 질문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유명장소나 특정 장소로 가는 길, 현지인 추천장소 등이다. 그 질문에 몇 가지 내 취향을 더하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질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취향을 담아 예를 들면 

'이 도시에서 오후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이나 휴식공간은 어디일까요?' 

'일기나 짧은 편지를 쓰기에 추천할 만한 카페나 장소가 있을까요?'

라는 식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방식으로 질문하고, 방문했던 장소들에 특정한 상황과 연관된 의미를 담아 기록해 두었다. 그저 무엇인가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에 빈티지하면서도 부드럽고 몽환적인 행복함을 주는 단어 '낭만'이 더해지는 것이다. 

수영장이나 텃밭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객실로 이어지는 중앙복도와 달리 노란색 포인트가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들어선 내 객실 1110호.

촉감이 좋은 나무재질의 키를 대고 들어간 객실은 높은 천장에 창밖으로는 중앙역과 기찻길이 보이는 방이었다. 길고 투명한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구, 침구까지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다. 방이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큰 캐리어 세 개는 펼칠 수 있을 너비의 복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여전히 침대는 내가 점프를 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침대 아래에는 벙커 수납함이 또 있었다. 기본룸 인데도 유럽에서 보기 드문 넓고 수납이 많았다.
창밖에 줄지어있는 자전거는 호텔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것이었다. 고개만 돌리면 자전거가 있는 도시.


호텔 내 가구와 침구, 조명과 컵은 로컬 혹은 자국 브랜드 제품들이었다. 객실과 호텔 내 조명들은 모두 Flos사의 제품들. 한 브랜드의 제품으로 각 다른 공간의 분위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듯한 디렉팅이 인상적이었다. 


로컬과 그들만의 철학을 그대로 담은 호텔

자, 이제 얼른 짐을 내려놓고 호텔을 한 바퀴 탐방한 다음 첫 번째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첫날 나의 예상 루트는 호텔이 있는 서쪽에서 동쪽까지 한번 훑어보는 것. 

호텔 > 국립미술관 > Frama > Apotek57 > Studio&KitchenX > Posterland > 디자인뮤지엄 

사실 국립미술관부터 이후 장소들은 대부분 인근에 있고, 식사와 커피 한잔을 즐기는 곳인데, 내가 가장 직접 보고 싶었던 곳들이라 N번 방문 전 둘러보러 가기로 했다. 

어차피 첫날의 목적은 길을 익히며 적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유 있는 일정이었다. 


그렇다면 우선 이 호텔의 핵심 스폿 몇 군데를 공유하고, 거리로 나서보겠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수영장으로 이어진다.

'ㅁ'자로 생긴 호텔의 가운데에는 수영장과 이어지는 정원이 있는데 이곳은 휴식이나 파티에 활용되고, 호텔 내 레스토랑인 'Kontrast'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를 직접 기르는 텃밭도 있다. 도심에 있는 호텔에 작은 정원이 있다니... 언젠간 내가 만드는 공간에 활용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대망의 루프탑 수영장.

풀사이드에는 자유롭게 앉아서 피자나 음료, 술 등을 시켜 먹을 수 있다. 해가 뜨거운 날에는 사람이 많다. (아침 사진)

얼마나 기다렸던 이 장면인지..

당시에는 프라이빗 파티를 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구경할 수 있었다. 

화이트 컬러로 맞춰 입은 사람들이 브랜드 행사에 참여해서 샴페인을 한잔씩 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수영장과 날씨,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계속 듣고 싶은 백색소음 같았다. 


수영장은 예약제로 이용되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수영장의 끝쪽에는 사우나가 있고, 그 길목에는 테이블과 의자, 쿠션이 있어 자유롭게 앉아서 쉬거나 술과 음료, 피자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빌라 코펜하겐의 수영장에는 특별한 포인트가 있다. 

풀장의 물은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도록 28-30도로 온도가 유지되는데, 호텔 내 냉방으로 발생되는 열로 물을 데운다고 한다. 이런 지속가능 방식이 이 호텔로 이끄는 그들만의 무기가 되는 듯했다. 

28-30도의 물 온도가 아침에는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사우나 후에는 너무나 개운하게 즐길 수 있었다. 


네이비 컬러 지붕과 붉은 벽돌, 클래식한 건물과 상반되어 더 매력적으로 어우러진 수영장의 가구와 집기.

한동안 눈을 떼기 어려웠고, 다음날 오전으로 풀장을 예약해 두고 겨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 전자화폐가 일찍이 익숙해진 도시인만큼 호텔 관련 서비스를 어플로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중 빌라코펜하겐은 'strawberry'라는 어플을 통해 숙박예약과 각종 서비스 예약/변경할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다시 돌아간 로비는 처음 들어올 때와 달리 '힙'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디제잉이 시작되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연령대에 휴식과 수다를 즐기는 사람, 비즈니스를 위해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 홀로 맥주를 즐기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 어우러져 있었다. 


디제잉하는 곳 뒤로 계단이 있어 올라가 보니 이 건물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100년도 더 된 중앙우체국의 엘리베이터와 벤치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심지어 지금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3번째 이미지) 호텔 입구에는 작은 편집숍이 이어져 있다. 그곳에는 다양한 로컬 브랜드의 소품과 화장품, 수영복 등을 판매한다.


'걷기'에 자신감을 붙이고 싶다면 코펜하겐으로.

지금까지 약 20개 도시를 다니며 코펜하겐만큼 걷기에 좋은 도시가 있을까 싶었다.

'자신감을 붙이고 싶다면'이라는 수식을 단 것은 정말 걸어서 도시를 속속들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을 걸어서 여행한다라고 하면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코펜하겐은 정말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순전히 내 기준이지만 누구든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호텔을 나와 걷는 내 발걸음은 그야말로 날아갈 듯했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걷다가 멈춰 서서 셔터를 눌러댔고,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과는 'Hej'라며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찍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보이면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외국에 나오면 잠자고 있던 내 하나의 인격이 깨어나는 듯 더 밝고 명랑해진다. 

그 기분이 좋아 자꾸만 여행을 더 가고 싶어 지는 것 같기도 하다. 


첫 번째 목적지인 국립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구글맵을 몇 번 보며 이미 머리로 익혔다. 

나는 여행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여러 번 보며 로드뷰와 주변 건물들 까지 익혀 길을 미리 외워두는데, 이렇게 하면 길 찾기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고, 새로운 길을 찾아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그렇게 골목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지도를 보지 않고도 웬만한 길은 발이 기억하게 된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라 길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도착한 국립미술관.

현수막이 어쩜 저렇게 건물과 잘 어울리지? 분위기에 취한탓인지 모든 게 멋져 보였다. 

반짝이고 푸른 분수대를 또 한참 서서 바라보고는 겨우 들어간 미술관.

사실 내가 이 미술관에 온 이유는 미술관 내에 있는 카페테리아를 가기 위함이었다. 팬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과 함께 얼핏 보이는 인테리어 속에 앉아보고 싶었기 때문.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코펜하겐 대부분의 건물은 천장이 높은 듯했다. 

높은 천장과 쏟아지는 자연광, 그리고 우드&그린으로 따뜻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주문한 팬케이크와 커피. 가격은 그야말로 사악했다. 약 4만 원 정도였는데, 사실 양이 많기도 했고, 한 입 먹자마자 물가 따위는 눈 감아줄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약 4만 원짜리 팬케이크.. 물가 눈감아..

배가 고팠던 탓에 팬케이크를 빠르게 먹고 한숨 돌리니 시간이 금방 갔다. 

미술관 전시를 오늘 보고 싶지는 않아서 뮤지엄샵과 건물 곳곳을 둘러볼 생각에 다시 짐을 챙겨 카페테리아를 나왔다. 


코펜하겐을 여행하면서 나선형 계단을 꽤 많이 보았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아보고 싶어 메모해 두었다.(아직 못함) 뮤지엄샵은 남편이 늘 어딜 가든 둘러보는 습관이 있어 나도 덩달아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아 꽤 오래 보았다. 


정문 맞은편에는 건물 뒤편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고, 마치 숲을 담은 액자처럼 보여 찍어두었다. 

조각상 사이로 보이는 분수와 윤슬, 뛰어노는 아이들. 눈앞에서 영화 촬영을 구경하는 듯했다. 평화로운 모습에 그 잔상이 오래 남은 장면 중 하나.



미술관 곳곳을 둘러본 후 나오니 해가 더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 있었다. 

잠시 그늘을 찾다가 발견한 신기한 나무. 나무 기둥이 짧고 가지가 제법 아래에서부터 뻗어 나와 마치 땅속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리가 뜨거워져 머리를 탈탈 털고는 다시 열심히 걸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풍경은 초록과 빈티지한 장식과 컬러의 건물들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낮고 반듯한 벽돌 건물들 사이로 곳곳에 장미가 피었고, 그곳에 자리 잡은 내 로망의 장소들. 다물어지지 않는 입과 혼자 속으로 '대박..'을 외치던 그 이야기는 다음화에 담아보겠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다음화 예고는 사진으로 기대감을 보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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