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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May 20. 2024

나의 HOME을 찾는 여행, 그 여행이 이끈 지금의 나

돌아보니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여행이었다. 

이번 14화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저의 조금(많이) 쑥스러운 날것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소박한 필력으로 써 내려가는 글이라 매주 글 쓰는 도전을 해내는 것에 의미를 두자! 하며 시작한 연재인데, 꾸준히 늘어가는 조회수와 응원에 정말 큰 힘을 얻게 되었어요. 

이번 연재는 14주째인 오늘을 마지막으로 끝나지만, 저의 기록은 이제 시작입니다. 힘을 잃어가던 저의 자신감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Konstrast에서 황홀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든든해진 배와 나른함을 더 맘껏 즐기려 산책에 나섰다. 

계획에 없던 산책이라 객실에 다시 들르지 않고 카메라도 없이 핸드폰만 달랑 들고 나왔다. 바스락 거리는 셔츠 원피스에 단화를 신고 호텔에서 조금만 나가면 길게 펼쳐지는 강변으로 향하는 길. 시원한 바람과 해가 묵직하게 내려와 도시를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높은 건물 몇 채를 지나가니 횡단보도 건너에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이 보였다. 얼른 그 풍경 속에 나를 세워두고 싶다는 생각에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나는 뛰기 시작했다. 

석양에 강물과 건물의 창문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사람들이 강으로 다이빙하는 첨벙! 하는 소리가 그렇게 이국적일 수 없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나에게 물은 아름답거나 무서운 극과 극을 달리는 존재인데 코펜하겐 사람들에게 물은 그들 삶 사이사이를 흐르는 반려의 존재 같았다. 

강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서울의 한강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의 한강과 공원은 조금 먼발치에 떨어져서 감상하는, 혹은 그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을 타고 '감상'하는 것이라면, 코펜하겐의 강은 한쪽 발목을 담그고 물가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첨벙 뛰어들어 물의 온도와 흐름을 느끼는 '어울림(융화)'같았다. 


강변과 강 위를 가로지르는 긴 나무다리(길)를 따라 산책했다. 저 멀리 왕립도서관도 보이는 걸 보니 반가웠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공공 수영장이 나왔는데 내가 알고 있던 수영장의 개념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강 수영장처럼 정말 깔끔하면서 인위적으로 만든 수영장이 아니라 강에 뛰어들어 놀기 좋은 기구를 설치해 둔 것이었다. 구글맵에서 보던 게 이거구나! 하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공존했던 순간. 

실제로 미끄럼틀을 타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해가 더 뜨거운 낮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을 것 같다. 


산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알아차린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 풍경이 내가 9일 동안 여행하며 보고 느꼈던 것의 총집합이구나!'라는 것.

여행하며 발견한 도시의 키워드를 모아놓은 완벽한 한 문장 같았다. 


퇴근 후 복장 그대로 삼삼오오 모여 성별에 무색하게 훌렁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어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수영 후 엉덩이에 물자국을 새기며 기분 좋게 걸어가는 사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화이트와인과 사워도우, 조개껍데기에 올린 휩버터를 곁들이는 사람 등 내가 이 도시 곳곳에서 보며 눈이 반짝였던 모습을 한 데 모아둔 것 같았다. 

특히 아래의 사진은 개인적으로 코펜하겐(덴마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너무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서류가방과 양복을 벗어던지고 물에 한 명씩 뛰어들며 아이처럼 웃던 사람들. 뭍으로 다시 올라와 다이빙하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이라 그런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한두 시간쯤 걸었을까,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이탈리아에서 오신 할머니 사진을 찍어드렸다. 사랑스러운 도시이지 않냐며 말보다는 마음이 더 통한 대화를 짧게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은 더 짙은 핑크, 보라색을 띠기 시작했고, 호텔 앞 티볼리공원은 마지막날 아쉬움을 더 키워 나를 붙잡는 듯 아름다웠다. 


산책 후 아쉬움이 남아 수영장으로 나가서 도시를 한참 바라보았다. 

파란 수영장 물에 비친 석양과 곧 시작될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고 싶은 도시'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쉽게 잠들지 못한 밤을 지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Hart Bagerie에서 아침도 먹고, 마지막으로 코펜하겐의 아침 도시를 산책하려고 나섰다. Hart Bagerie는 카다멈 크로와상과 코펜하겐 로스터리 Prolog의 커피를 맛볼 수 있어서 꼭 가려고 했던 곳이었다.

따뜻한 라테와 카다멈 크로와상을 주문했다. 8시 5분쯤 도착했는데, 주문하는 도중에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북적임이 반가운 여행자(나). 카페 앞 벤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는데 눈이 동그래지는 맛...! 첫 입에 알게 되었다. 카다멈 크로와상 하나 더 사가야지!

내 옆에 앉은 커플이 내가 먹는 걸 보더니 후다닥 들어가서 주문했다. 그만큼 내 반응이 찐으로 보였겠지? 

드나드는 사람들과 거리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카다멈 크로와상 한 개를 더 사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 

이른 아침이라 아직 영업 전인 가게들이 많았지만 쇼윈도를 구경하는 것 도 멋졌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마저 챙기고 잠시 방을 온전히 느끼고 떠나고 싶어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웠다. 

의도치 않게 3박을 보낸 빌라 코펜하겐. 다음에 오게 되면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꼭 다시 와보고 싶다. 도시의 철학을 곳곳에 담아둔 곳이라 더 좋았던 곳.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점점 멀어지는 도심을 바라보니 떠나는 게 실감이 되었다. 아쉬움과 미련 가득 남기고 떠나며 끝난 나의 9박 10일간의 코펜하겐 여행. 

여행하던 중에는 봇물처럼 터지는 감동과 행복, 깨달음, 그리고 밤잠을 설치게 했던 많은 생각들로 이 여행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6개월이 훌쩍 지나 지금까지 천천히 깨닫게 된 이 여행이 이끈 나의 삶의 방향을 기록해보려 한다. 


나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던 회사를 떠나 독립을 선언했다. 업무적으로는 그동안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알맹이는 완전히 달라진 것. '행복은 아름다움으로부터'를 매일 되새기며 꾸준히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가 발견한 아름다움으로 행복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나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이 전에는 상업브랜딩을 하고 싶었다) 꽤 많은 변화와 깊어진 생각, 근황이 있는데 변화를 겪으며 정리된 생각부터 차근히 적어보려 한다. 


여행 후 나는 

행복한 삶을 더 당당하게 갈망하게 되었고, 

관찰과 여과 없는 사색, 기록을 더 사랑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하는 하루는 덜 우울하고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의 삶을 수식하는 단어와 표현을 더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단, 그 기준은 내 안에서 찾는 연습을 하고 있다.(다른 사람의 기준에 휩쓸리지 않는 힘을 기를 것)


지구 반대편에서 혼자 보낸 시간은 작년 이맘때 상상한 '1년 뒤의 나'가 아닌 조금 다른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완전히 달라졌다기보다는 더 구체화된 것 같은 지금. 

작년에 내가 꿈꾸던 내 모습은 과연 현재에 충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용도, 즉 현실 도피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꽤 자주, 오래 꿈꿔온 미래가 있었고, 그 꿈에 대한 갈망이 진짜인지 계속 확인하려 애썼다. (아마도 회사에 익숙해져 '꿈'이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추운 겨울, 퇴근 후에 꽃을 배우러 다니고, 꿈에 그리던 도시에 가보고, 내 시선으로 사진을 찍고, 내 솔직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 무엇보다 '행복은 아름다움으로부터'라는 모토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여행 이후 나는 완전히 지쳐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것이 단지 잠시 일상을 떠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갈망을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도전하기로 했다. 

아마 내 지갑은 한동안 얇아질 테고, 또 다른 스트레스와 고난이 시작되며, 빛을 볼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인고의 시간을 감내할 자격이 있는 꿈 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시선과 생각으로 기록한 것들을 가지고 또 다른 기록을 만들어내는 사람. 콘텐츠 크리에이터, 프로젝트 디렉터라고 불리는 그런 일. 지난 포트폴리오 속 잠들어있는 할머니를 위한 전시, 곰팡이와 우리, 꽃 등 열정을 다해 그렸던 프로젝트를 세상에 소개할 날을 꿈꾸며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여행의 기록'.

행복 그 자체를 느끼게 해 준 순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여 사람들이 감상하거나 소장하고, 또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만든다. 여기에서 기록은 곧 표현의 방식이 되고, 나는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그 과정 또한 기록해보려 한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데,

나의 아름다움을 찾던 행복한 시간이 담긴 프로젝트로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행복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나의 꿈을 도달하면 끝인 목표가 아니라 도달과 함께 거기에 터를 잡고 더 견고하고 따뜻하게 만들어갈 나의 보금자리, 집(HOME)이라고 하고 싶다. 



저의 새로운 시작을 SHELL, WE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Shall we?라는 말처럼 제가 바라본 아름다움과 그로 느낀 행복으로 이끄는 손을 내밀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Shall 이 아닌 Shell(조개)를 더한 것은 조개와 아름다움의 상관관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활용한 것인데요, 비너스에 등장하는 조개는 '아름다움의 시초', '아름다움의 전달자'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또한 예부터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했던 이유에서인지 조개가 '고귀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이러한 이유로 조개를 저의 새로운 이름과 로고에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았던 로고.


최근 Shell, we를 통해 '여행의 기록' 프로젝트를 조금씩 선보이고 있는데요, 

코펜하겐에서 인상적이었던 포근하고 행복했던 브런치 테이블의 장면을 모티브로 한 페이퍼 태그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담은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저의 취미(?)와 이런 저의 선물을 좋아해 주는 친구, 가족들을 생각하며 만든 제품이에요. 앞으로 세 가지 제품을 더 선보일 예정이며, 사진과 글을 담은 책도 언젠가 소개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날까지 저는 꾸준히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아름다움을 찾아 기록하고 전해볼게요.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Shell, we의 소식과 선보이는 제품은 아래의 링크트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hell, we >> https://linktr.ee/CEMTnSHELLWE



P.S. '결혼 후 홀로 떠난 코펜하겐'연재 이후에는 'Shell, we'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 그 속에서 기록한 생각들을 담은 연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이전 13화 코펜하겐 식탁에는 맛있는 '긱시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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