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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May 13. 2024

코펜하겐 식탁에는 맛있는 '긱시크'가 있다.

나의 소심하고도 화려한 미식 경험

덴마크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미식'. 노마(Noma) 같은 유명한 레스토랑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한국에서 개성 있는 와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생겨나고, 나도 와인과 그에 곁들일 음식에 관심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북유럽 요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 '에디션 덴마크'를 통해 덴마크 커피와 티, 디저트를 먹어보기도 했던 것이 이번 여행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나는 여행에서 먹거리와 볼거리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큰 고민 없이 볼거리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몇 끼는 그냥 넘기거나 배를 채우기만 해도 된다 라는 주의로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더 많이 보려고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이번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점점 알아볼수록 '이건 먹어봐야 해!' 하는 것들이 늘어갔다. 하지만 예약 시점과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점, 예산 등을 고려해서 '소심한 미식경험'을 하기로 했다.


사실 코펜하겐 여행에서 맛본 대부분의 음식들이 나는 입맛에 맞았고, 심지어 '아, 역시...!' 하며 첫 입에 감탄사가 나왔다. 어쩌다 보니 소소하게 미식을 즐기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소소한 식사들 중 제대로 된 미식 경험을 하고 싶어 여행 시작 둘째 날에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처음에는 비싼 물가에 내가 남편을 두고 혼자 이래도 되려나..? 하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코펜하겐 거리를 거닐며 그 주저함은 곧 내가 먼저 경험해 보고 이끌어보자! 하는 도전의식으로 바뀌었다.

여러 가지 후보 중에 빌라 코펜하겐 호텔 1층에 있는 Brasserie Kontrast, 아뜰리에 셉템버 오너 프레데릭의 bar Apollo, 그리고 Restaurant Barr 세 곳으로 추려졌다.(그리고 끝까지 고민했던 Mirabelle Spisería) 각기 다른 매력과 대표메뉴가 있는 곳들이라 골고루 가고 싶었지만! 결론적으로는 Kontrast에서 두 끼 반 정도를 먹게 되었다.


코펜하겐의 긱시크는 그들의 패션과 주거형태, 삶을 대하는 태도 전반에 묻어나는 듯했는데 특히 음식에서는 더욱 그들만의 긱시크가 아름답게 담기는 듯했다. '아름다운 긱시크'라는 말이 모순적인 느낌이 있는데 이렇게 조금씩 이가 잘 맞지 않아 생기는 틈에서 나오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그들만의 분위라고 느껴졌다.


Brasserie Kontrast

Tietgensgade 39, 1704 København, Denmark

http://brasseriekontrast.dk/

첫 미식 코스는 Kontrast 레스토랑 실내에서였다. 어차피 두 번 올 예정이므로 처음은 오픈 키친을 구경하며 방문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실내에 자리를 잡은 것. 그리고 오후 4시쯤부터 테라스는 이미 빠르게 만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날씨를 놓칠 사람들이 아니지!

메뉴는 꽤 심플하면서도 다양한 편. 메인 안에서도 파스타, 리소토, 스테이크 등으로 나뉜 곳들에 비해서는 가짓수가 적은 편이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스타터는 생략하고 메인 메뉴와 와인 한 잔을 곁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추천을 받아 주문한 Fish of the day ~ champagne sauce 그리고 샴페인 한 잔.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과 , , 입술과 혀의 촉감까지 모두 대만족이었던 식사. 내가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맛있다고 느낀 메뉴! 오로지 풍미와 감칠 만으로 가득한 흰살 생선요리였다. 곁들임으로 사워도우와 휩버터&솔트가 나왔는데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조합을 덴마크 식탁에서 기본인 음식으로 자주 먹을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눈이 즐거웠던  아래의 사진을 보시라!

날치알이 들어간 샴페인 소스는 생선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에 착 붙는 감칠맛을 만들어냈고, 살짝 데친 양배추 위에 소스와 함께 뿌려진 꽃은... 정말 예술 그 자체였다. 덴마크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너무 기분 좋고 맛있게 먹었던 식사. 다음날은 내가 좋아하는 슈니첼을 먹어볼 예정이었는데 그전에 생선요리를 먹어보기를 너무 잘했다 싶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제대로 장식하는 느낌.

오픈 키친에서 뿜어져 나오는 셰프들의 손맛과 불향, 코를 감싸는 풍미 사이에서 경험하는 나의 소심한 미식 경험. 마치 컬러도, 그래픽도 없는 하얀 종이봉투를 열었더니 오색 찬란한 스키틀즈가 가득한 그런 '소심하지만 화려한' 경험이었다.


다음날, 나는 로컬 시장과 편집숍, 그리고 지도 없이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 도시에서 머물며 줄어든 건 쇼핑욕구, 늘어난 건 식욕과 뜨거운 햇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여행보다 살아간다는 느낌이 짧은 시간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TorvehallerneKBH

 토브할렌 마켓으로 가는 길에 편집숍, 빈티지숍 몇 개를 둘러보고 빠르게 마켓으로 이동했다.

마켓 안에는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한식당 코판(Kopan)의 푸드트럭도 있다고 해서 구경도 하고, 마켓 구경은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필수 코스이기에 기대를 안고 갔다.

도착하니 펼쳐진 각종 농수산물과 꽃, 그리고 유럽 각지의 음식들! 그 사이사이에 커피콜렉티브 같은 덴마크 대표 커피 브랜드들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시장에 가면 빽다방이나 메가커피를 보는 게 대부분이라 그런지 생소하면서 세련된 느낌이랄까? 시장을 방문하는 연령대가 다양한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광장시장에 들어선 카페 어니언이 괜히 더 생각났다. 이런 모습이 서울에서도 이벤트성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 날을 고대하면서 뜨거운 날씨에 아사이볼 한 그릇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언제나 즐겁고 새로운 다른 나라 꽃시장, 꽃집 구경하기. 옥수수, 호박 등 꽃이 아닌 것들과 함께 엮어놓은 모양도 너무 좋았고, 화분 장미와 마켓 부케는 정말 사고 싶었다...!

그리고 도로변에 있던 코판! 한국인 유학생에서 지금 코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대표님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었는데 나라를 막론하고 형용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지로 뛰어들어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 두세 번 돌려보았다. 푸드트럭 안으로 슬쩍 보았던 대표님의 모습에 성덕의 마음을 살짝 느꼈던 순간.


뜨거운 태양에 헥헥거리던 나에게 아사이볼 한 그릇은 생명수 같았고, 덕분에 힘을 내어 호텔까지 돌아왔다. 저녁은 예약을 해 두어서 잠시 비는 시간에는 수영장 테라스에서 아이스티를 한 잔 했고, 곧 시간 맞춰 내려갔더니 테라스에 앉을 수 있었다. Kontrst에서 먹는 두 번째 소심한 미식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제대로 된 식사. 마지막날까지 날씨는 행복한 무대를 꾸려주듯 빛났다.

자전거와 파란 하늘, 신/구 건물의 조화가 한눈에 보이면서 햇살이 내리쬐는 곳. 코펜하겐스러운 테라스였다. 메뉴는 이미 어제 정해두었다. 내가 좋아하는 슈니첼을 먹기로. 원래는 Barr 레스토랑에서 먹어보고 싶었지만 갈색 소스가 없는 이곳만의 슈니첼도 먹어보고 싶어 도전했다. 그리고 코펜하겐 대표 브루어리의 에일도 한 잔 시켰다. 고기에는 맥주지!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워도우&휩버터, 그리고 메인 메뉴의 비주얼에 1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국에서는 잘 못 보았던 샬롯과 그 위에 올려진 완두콩, 그리고 슈니첼 위에 프로슈토라니! 게다가 버터 베이스의 꾸덕한 소스까지. 접시 위의 모든 재료를 맛보는 내내 행복했다. 슈니첼은 한국의 돈가스를 생각하면 비슷하지만 또 그렇게 같지는 않다. 얇고 육즙 가득한 고기는 부드럽고, 튀김은 고기에 착 달라붙어 극강의 바삭함이 있다. 맥주와 정말 잘 어울리는 메인 메뉴를 먹고 나니 어제부터 이어진 미식 경험의 마침표를 찍을 디저트가 생각났다. 그래서 직원의 추천을 받고 시킨 라바 케이크. 테라스에서 1차를 했으니 2차는 더위도 식힐 겸 실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앉은자리에서 바라본 뷰. 어제는 붉은 소파에 앉았으니 반대편에 앉고 싶었다.

디저트 메뉴판은 따로 주었고, 실내로 들어오면서 물도 시원한 것으로 모두 바꿔주는 세심함이 좋았다.

나의 소심하지만 화려한 미식경험의 마지막, 라바 케이크는 오븐에 구운 초콜릿 케이크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주는데 뜨거울  가장 달콤한 쇼콜라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조화 직원의 말로는 환상적이라고 했다.

바닐라빈이 콕콕 박혀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디저트. 먹지 않아도 이미 입에 달콤함이 퍼지는 것 같았다. 뜨거울 때 빨리 먹으라는 말에 바로 한 입 먹었더니 저절로 눈이 감기며 미소가 번졌다. 과연 마무리 다운 맛이랄까? 남은 맥주와 시원한 물, 모두 잘 어울리는 디저트로 평소에 초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후로 초콜릿케이크를 종종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4D로 제공하는 후기를 끝으로 마무리하는 저녁.

행복하고 배부른 식사를 하고 나니 정말 내 몸 전체가 행복 그 자체가 된 느낌이었다. 이 도시에 더 오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도 없이 가볍게 산책하고 싶어 나섰다.


석양과 사람들, 물과 윤슬이 함께했던 초저녁 산책을 이번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에 담으려 한다. 사실 초저녁에는 못 가봤던 편집숍을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기분에 따라 산책으로 바뀐 것이었기에 마치 이 도시가 나를 이끄는 듯한 운명적인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여행 속 나, 이후의 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여행 기간 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광경 속에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피날레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이 여행이 이끈 지금의 나. 나는 이 아름다운 기억을 기록하는 것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선택했고, 하고 싶은 것을 한 가지 하려면 하기 싫은 일 열 가지를 해야 하는 법칙처럼 아직은 고민과 고통이 더 큰 과정 속에 있지만 쨍하고 빛나는 행복을 다듬어가고 있다. 그 이야기까지 더한 마지막 연재까지 함께 동행해 주는 독자들이 있겠지?!(아마도)


-이번 13화는 다음 편 예고 이미지 없이 길게 문장으로 적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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