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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트 May 06. 2024

윤슬을 가까이하는 사람들

사랑과 행복이 자연스러운 도시

든든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는 여행하는 나를 '현지화' 하는데에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릴 베이커리에서 덴마크식 아침을 먹고 바로 근처 현대미술관으로 가는 길. 사실 이 길을 처음 간다면 지도를 따라가고 있어도 의심이 들 수 있다. 무성한 풀밭과 컨테이너 박스 건물이 늘어져있는 길을 지나가면 갑자기 나타나는 미술관.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라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자유롭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동네였다. 컨테이너 박스 곳곳에는 카페와 베이커리가 들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 풀이 무성한 정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듯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처음 보는 광경이라 낯설게 느껴졌을 뿐 그들에게는 편안한 일상이었다. 

현대미술관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전시 하나하나가 매력적이고 퀄리티 높은 작품들이었다. 제임스터렐 전시도 있었는데 한국의 뮤지엄산, 런던 테이트에서 보지 못했던 전시라 너무 반가웠다. 학생들이 미술관에서 자유롭게 관람하며 토론하고, 한 명씩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현대미술관에서도 이런 광경이 더 자주 보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예술을 드높이 하는 것들이 더 강조되는 느낌을 자주 받았는데, 가까이하면서 친숙해지고 또 참여해 보는 방식이 예술을 더 보편화할 수 있고, 그래야 그 가치가 더 넓은 범위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Kuglegården 

Danneskiold-Samsøes Allé 15, 1434 København, Denmark


미술관을 적당히 둘러본 후 디자인 브랜드 쇼룸과 운하 산책을 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니 도착한 곳. 이런데 쇼룸이 있다고..? 하며 조금 걸어가니 갑자기 나타난 작은 성 같은 건물! 루이스폴센(Louis Poulsen), 플로스(Flos), 펌 리빙(ferm LIVING) 등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었다.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한 ㅁ자 구성의 건물로 곳곳에 대포알처럼 보이는 구가 쌓여있는 게 신기해서 찾아보니 원해 해군 무기고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도 Kuglegården – The Ball Yard이라는 것. 본래 건물 구조를 최대한 잘 보존하여 활용된 곳이라 그 흔적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좋아하는 브랜드들의 각 쇼룸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함께 운영되는 곳이 많았다. 3 Days Design 행사 기간에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는데 한 번쯤 맞춰 와보고 싶었다. 

정원을 통과해 루이스폴센 매장을 지나 나오면 바로 운하와 호수로 이어진다. 푸른 잔디에서 윤슬 반짝이는 물가로 오는 길이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아서 혼자 두세 번 왔다 갔다 했다. 어쩜 이 도시는 쌓여있는 자전거마저 이렇게 멋진지! 점점 부러운 것들이 늘어간다. 



도시를 아우르는 운하를 산책하는 시간. 동선을 보니 가볼까 고민했던 Restaurant Barr를 포함한 다양한 식당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푸드트럭도 많아서 대낮의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오히려 도심보다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으며 로드뷰로 보았던 동네인데 직접 와보니 더 좋았다. 다음에는 근처 숙소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뜨거운 햇살을 즐겨보기로 했다. 

내가 걸었던 동네는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관과 현대식 건물이 많은 항구 동네인 듯했다. 그러다 보니 멋진 강변과 그 뷰의 정점을 만드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나에게는 가장 큰 볼거리였다. 반듯한 몸체에 경사진 지붕에는 초록 잔디가 낮게 깔린 지붕 건물, 그 앞에는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중에 더 가까이에서 산책하다 알게 된 건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훌훌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기도 한다는 것. 가끔 길 가다 엉덩이가 동그랗게 젖어있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는데 아마 그렇게 짧은 수영을 즐기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운하를 산책하며 보았던 물을 가까이하는 그들이 일상 왜 아름답다고 느껴졌을까? 다리를 건너고 강변을 걷던 당시에는 최대한 그 기분을 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데에 집중했고, 이후 그때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며 생각한 건 이렇다.


코펜하겐을 여행하기 전 가장 많이 보았던 도시의 수식어는 '물의 도시'. 

운하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들을 '윤슬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물과 긴밀한 도시를 넘어 물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그 속에서 유영하는 사람들 같았다. 

특히 내가 방문했던 9월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씨가 꽤 오래 지속되는 시기이었다. 덕분에 잔잔할 물결이 덮인 운하와 호수,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그 속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래 잔상으로 남았다. 

 평소에도 나는 물과 빛의 조합이라면 찰나 일지라도 눈이든 카메라든 들이댄다. 훗날 그 황홀한 느낌이 그리워 꺼내어볼 때면 이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끔 믿기지 않아 사진을 확대해 더 자세히 보기도 한다. 

 코펜하겐의 물과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건 보다 적극적으로 그 아름다움에 뛰어들어서 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계절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이를 바라보는 나의 부러움과 이색적인 모습이 내가 '아름답다'라고 느꼈던 이유일 것이다. 


Nyhavn (뉘하운)

Indre By, Denmark


2-30분 정도 걸어 뉘하운까지 들어왔다. 대표적인 관광스폿인 만큼 좁은 거리와 식당에는 사람들이 넘쳤는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을 두 번이나 보았다. 중간중간 자리 잡은 벤치에 앉아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 언젠가 봉태규 배우가 자신이 본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로 해변에서 둘째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는 아내, 그 모습에 익숙한 듯 주변을 뛰어노는 첫째 아이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이 당시에는 '음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 상상의 장면을 직접 보니 더욱 체감되는 코펜하겐의 포용력과 시선의 차이. 

뉘하운의 예쁜 집들과 레스토랑, 보트를 구경하며 걸었더니 어느새 도심으로 들어왔다. 다음 일정은 지하철을 을 타고 The Audo가 있는 동네로 가는 것. 디자인 리빙숍 겸 호텔로 오픈 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곳으로, 내가 코펜하겐행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예약했던 호텔이었다. 하지만 후에 몇몇 후기를 보면서 미숙한 부분들을 알게 되었고 숙박은 다음에 하기로 했던 것. 하지만 쇼룸 자체도 너무 궁금했던 터라 일정에 넣어두었다. 


The Audo

Århusgade 130, 2150 København, Denmark

Web 

이곳이야 말로 열 마디 설명보다 사진으로 감상하는 것이 더 와닿는 곳. 

붉은 벽면에 검은색 창 틀이 웅장해 보였다. 내부로 들어가니 패턴이 잘 보이는 컬러 대리석과 다양한 과감한 패턴의 패브릭, 그 사이의 중심을 맞춰주는 내추럴한 톤의 가구와 조명들. 테라스는 식물과 붉은 벽면이 또 강한 대비를 이루어서 큰 장식 없이 화려하게 느껴졌다. 

호텔로 이어지는 계단은 정문에서 그대로 정면 경사로 이어지는데 1,2층의 카페와 레스토랑, 콘셉트스토어의 정점을 이루는 그들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이 느껴졌다. 꼭 숙박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와봐야 할 곳. 직원들은 역시나 친절했고, 콘셉트 스토어에는 다양한 덴마크 브랜드 제품이 판매 중이었다. (단, 오픈하지 얼마 되지 않아 운영 시스템이 자리 잡기 전이라 그런지 위생 관리에 대한 컴플레인이 자주 보인다. 방문한다면 간단히 둘러보는 정도로 추천.)


코펜하겐은 정말 어디를 가든 여유가 넘친다. 그 이면의 것들은 잘 보지 못한 여행객의 시선일지라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들 또한 나름의 애환과 고리타분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회적 관념이 있을 것. 하지만 내가 본 배우고 싶은 점은 진정으로 나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사랑을 존중하고 그들 삶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즐길 줄 아는 삶의 모습이었다. 제목의 '윤슬'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삶 주변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정말 여행의 끝이 코앞에 있다. 이후 일정은 숙소인 빌라 코펜하겐 1층에 있는 레스토랑 콘트라스트(Kontrast)에서 즐긴 두 번의 저녁과 수영, 가벼운 도시 산책. 마지막까지 맘껏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 도시의 기록도 한 두 회 정도 남았다. 기록 끝에는 이 여행의 기록을 기반으로 한 나의 프로젝트 소개와 여행이 준 생각할 거리에 대한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열두 번째 브런치 연재는 다음 화를 예고하는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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