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201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외
별점: 4.5/5
1969년 할리우드, 잊혀 가는 액션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새로운 스타들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릭’의 옆집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가 이사 온다. ‘릭’은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기뻐하지만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 형편상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게 된 ‘릭’과 ‘클리프’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릭’의 집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던 중 뜻하지 않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게 되는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킬 빌>에서 그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여 <데스 프루프>라는 과도기를 거친 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완성된 타란티노식 복수극의 특징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복수를 시네마를 통해 대신 전달하는 작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데스 프루프>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복수를 하는 작업이었다면 <바스터즈>와 <장고>는 각각 유대인을 학살하던 나치에 대한, 흑인을 착취하던 노예주에 대한 복수극이었다. 타란티노는 그 복수를 그리는 과정에서 영화를 보게 될 현실의 유대인, 흑인, 혹은 여성들에게 "이 영화는 너희들을 위한 거란다"와 같은 온정을 내비친다. 유혈이 낭자하고 뇌수가 터지는 잔혹한 액션 시퀀스 속에서도 타란티노의 복수극을 보다 보면 왜인지 모를 따스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앞서 <라 라 랜드>에서 필자가 "시네마는 기적을 선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타란티노의 복수극은 이 세계의 소외된 자, 약자들에게 바치는 기적과도 같은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를 '시네마적 온정'이라 부르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작품이자 69년의 할리우드, 그리고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의 작업물 가운데 가장 따스한 복수극이며 동시에 그 시절의 할리우드에 바치는 동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영화의 제목에 포함된 'Once Upon a Time...'이라는 문장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옛날 옛적에...'와 같은 의미인 이 문장은 동화의 시작에서 흔히 쓰이는 구절이며, 주로 잔잔한 모험담과 해피 엔드가 포함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사용된다. 즉, 이 영화는 화려했던 6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여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시네마적 복수를 담은 한 편의 잔혹동화인 것이다.
영화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타란티노가 이번 복수극을 통해 영화적으로 구원하려 한 인물인 샤론 테이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의 주요 피해자이자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였던 그는 1969년 8월 9일로 넘어가던 새벽에 찰스 맨슨이 이끄는 히피 집단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8편의 영화를 찍은 배우였고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영화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였던 그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을 불행한 최후였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죽음 이후로도 끝나지 않았다. 죽음 이후 배우로서의 그가 그토록 쉽게 잊힌 반면 히피 집단에 의한 살인사건이라는 불행을 겪은 그의 이미지만이 마치 포르노처럼 박제되었다. 평생을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로서는 더한 치욕이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까지도 배우로서의 샤론 테이트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그를 설명하는 남은 수식어는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딱지 하나뿐이었다. 할리우드는 여태껏 그를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대상화하고 배우로서 활동했던 그의 일생을 존중하지 않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박제된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죽음 이후로도 계속되는 불행에 온정을 베풀기 위한 목적으로 이 영화는 기획되었다. 배우로서의 샤론 테이트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가 적어도 영화 속에서나마 생전처럼 기쁨 가득한 삶을 살며 배우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목표에서 말이다. 그를 살해한 맨슨 패밀리에 대한 복수는 덤이었다.
그 복수를 대신해줄 인물로 만들어진 것이 영화의 두 주연이자 가공의 인물인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다. 작중 폴란스키와 테이트의 옆집에 사는 것으로 묘사되는 인기가 시들해진 중견 배우 릭 달튼이 재기를 위해 이런저런 영화와 파일럿 에피소드 등에 출연하는 것으로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69년의 할리우드가 묘사되고 샤론 테이트의 행복한 일상이 묘사된다. 릭과 클리프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과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서부극의 시대가 지나고 배우와 캐릭터가 구분되지 않으며 과잉된 캐릭터성만이 범람하는 현대 영화계를 조롱하려는 상징으로 보이는 미라벨라라는 꼬마가 나오기도 하고, 영화 <대탈주>에 자신이 출연한 것을 상상하는 릭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며, 현실 세계와는 달리 건방 떠는 허풍쟁이일 뿐인 이소룡이 클리프에게 체면을 구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장면들은 현실과 닮아있지만 현실은 아니다. 타란티노는 유려한 평행세계를 만들어내어 그곳에서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자기 나름대로 다시 그려낸다. 말하자면 샤론 테이트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 셈이다.
타란티노는 여태껏 영화 내에 죄책 감 없이 가지고 놀며 죽일 수 있는 대상을 설정해두는 걸 즐기고는 했다. 이 세계에서 그런 대상은 현실에서 샤론을 죽인 히피들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고 개인적 원한과 구조적 문제를 분간하지 못하는 히피들은 결말부에서 실제 세계의 피해자들보다 훨씬 무참하게 클리프와 릭에 의해 살해당한다. 초반부의 개그 요소로 사용되었던 화염방사기가 다시 등장해 히피를 불태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극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통해 타란티노가 그려내는 대체 역사의 세계를 한 번 경험해본 바 있다. 모두가 히틀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으며 모두가 2차 대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안다. 그럼에도 타란티노는 영화를 통해 히틀러와 주요 나치 간부들을 모조리 특공대원들이 사살하는 것으로 영화를 끝맺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피해자들을 위한 진정한 복수이니까. 이번 영화에서도 타란티노의 그러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모두가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음에도 시간을 그 전으로 돌려 살인사건 자체를 일어나지 못하도록 클리프와 릭을 이용해 사건을 막은 후,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마치 "네가 살아갈 새 세계를 선물해줬으니 이제부터는 너 스스로 나아가 봐"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이 영화가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영화 중 하나인 지점도 비슷한 데 있다. 영화는 결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실제로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저 러닝타임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 얻을 수 없었던 온정과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성과는 관객들에게는 샤론 테이트라는 인물을 다시금 생각하고 배우로서 바라볼 여지를 남겼고,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형식적이지 않으면서도 진심이 담긴 위로를 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영화는 히피 사태가 정리된 후 샤론이 릭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는 릭에게 있어서도 샤론에게 있어서도 더할 나위 없는 해피 엔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들어선 집의 지붕 위로 "옛날 옛적... 할리우드에서"라는 문구가 뜨며 영화가 막을 내리는 것을 보다 보면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모두가 원하던 동화였음을 말이다. 그야말로 타란티노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따스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