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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Oct 05. 2022

세월 앞에 배제되어왔던 세대로부터의 화답

<윤희에게>, 임대형 (2019) 리뷰

감독: 임대형

출연: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나카무라 유코 

별점: 4/5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 앞으로 도착한  통의 편지. 편지를 몰래 읽어본  '새봄' 편지의 내용을 숨긴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윤희' 비밀스러웠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이 뛴다. '새봄'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남한 영화계에서 퀴어 코드는 어느덧 자연스러운 것으로 문화 속에 녹아들었고 이것이 퀴어 운동에 있어서  성과였다는 점은 부정할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가는 성소수자 이슈 사이에서도 고려되지 못하고 배제되는 이들이 있었던  역시 사실이다. <윤희에게>에서 주된 관계로 그려지는 중년 여성들의 동성애가 대표적이다. <윤희에게> 소외되어  세대의 이야기를 전면으로 끌고 온다는 점에서, 그리고  세대와 다른 세대 간의 화합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따스한 영화다. 이는 거센 추위에도 하얀 눈으로 가득해 추위를 날려줄 것만 같은 홋카이도의 따뜻한 이미지와 맞물려 안정적인 미장셴을 형성한다.


영화는 쥰이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여 윤희가 쥰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끝이 난다. 이처럼 작중에서 편지는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의식이라고   있다. 각각 쥰의 편지를 읽은 윤희와 그의  새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쥰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으로 흘러가는 영화는  사람의 배려와 조력을 통해 전개된다. 몰래 쥰의 편지를 윤희에게 보낸 쥰의 고모 마사코와 윤희와 쥰을 재회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새봄이다. 쥰이 윤희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번의 고쳐씀을 거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치지 못해 결국 마사코의 언질 없는 조력을 받은 후에야 그것을 발송할  있었던 것처럼, 윤희 역시 쥰에게서 받은 편지에 답을 하기 위해  번의 고심을 하고, 끝내 새봄의 도움으로 홋카이도에서 쥰과 재회한 이후에야 “나도  꿈을 라는 대답을 말할  있게 된다. 특히 윤희가 쥰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언급되는 “우리는 잘못한  아니니까라는 문장은 자신들을 죄인 취급하고 단죄하려 들었으며, 성소수자 담론이 활발해진 현재까지도 이미 중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무시해왔던 세상에 대한 화답과도 같다. 말하자면 <윤희에게>  자체로 윤희와 쥰이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띠는 것이다.


작중 윤희와 쥰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새봄과 마사코는,  문단에서처럼 영화를  편의 편지로 이해한다면 수취인과도 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각각 윤희와 쥰의 이후 세대와 이전 세대로서 변하는 문화 사이에  세대인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자신을 되찾을 것을 응원하는 이들로 그려진다. 특기할 점은 신세대인 새봄이 어머니의 사랑을 응원하는 것에 비해 훨씬 어려웠을  세대인 마사코의 선의이다. 그리고 작중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여성들 간의 연대의식이다. 마사코와 , 윤희와 새봄이 포옹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은, 때문에 매우 상징적이다. 그들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있으나, 동질감을 가지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연대를 표하며, 화해하고 화합하는 것이다.


또한 주목할만한 점은 <윤희에게> 세계와의 화해를 말한다 해서 모든 이들에 대한 용서를 논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중 윤희는 딸인 새봄은 물론 전남편 인호와도 끝내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화해하는 반면 끝까지 자신의 성향을 잘못된 것으로 취급해온 오빠 용호를 끝내 용서하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그를 떠난다. 세월이 지남에도 잊힐  없는 상처는 존재하기에, 영화는 화해를 논하는 과정에서  지점을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가  다른 의미에서 관계성을 매우  다루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영화는   사람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윤희는 쥰을 사랑한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해왔고, 쥰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 료코 앞에서도 선을 그으며 “때로는 굳이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은 이야기들도 있다 식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려 할만큼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이들의 재회는 단순한 첫사랑과의 재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서로의 품에서 오래도록 썩어가던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 말이다.


<윤희에게>는 주체성을 가진 여성들만의 서사이자 동시에 부드럽고 따스한 각기 다른 이들간의 연대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는 누구도 착취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그들 간의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려고 애쓴다. 윤희와 쥰이 그 오랜 시간동안 서로의 꿈을 꿔왔듯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졌을 사랑이 어떤 이들에게는 다시는 기대할 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지속적으로 말한다. 또한 그런 이들의 꿈을 다시금 현실로 만드는 일이 영화의 역할이라는 것까지도. 결말에서, 윤희와 새봄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공교롭게도 그 과정에서 겨울이 지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로소 윤희에게 ‘새 봄’이 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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