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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Oct 07. 2022

페르소나 월드의 해피엔드

<최악의 하루>, 김종관 (2016) 리뷰

감독: 김종관

출연: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외

별점: 4.5/5


늦여름 서촌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이희준)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과연 이 하루의 끝은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화려함을 걷어내고 가장 단순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비로소 소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둘 중 누구의 모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어찌 보면 가식과 연기의 시작은 미사여구와 수식어가 붙는 순간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캐릭터 속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던 배우 은희와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지 못하던 작가 료헤이가 만나 남산의 밤거리를 걷는 순간 비로소 영화는 더 이상 피상적 관계의 나열이 아닌 한 편의 세계로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얼핏 보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연기를 일삼는 은희가 불완전한 두 배역(은희가 은철과 현오에게 보이는 모습들)의 충돌 끝에 절망하지만 료헤이와의 대화를 통해 성장하고 한 걸음을 내딛는 플롯을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어쩌면 은희보다 더 중요한 캐릭터가 료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실제로 영화는 기자와 료헤이의 에피소드에서 제4의 벽을 넘나드는 대사를 통해 그가 은희와 은철, 현오와 같은 인물들을 만들어낸 작가 본인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 중에서도 은희라는 캐릭터는 어찌 보면 료헤이 본인과 가장 닮아 있는데, 자기 스스로의 이야기를 피하고 불완전하고 피상적인 세계를 구상하려다가 실패해 절망한다는 점이 그렇다. 기자와의 만남에서 료헤이는 비로소 그것을 깨닫고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인물들에 대해 되돌아본다. 그는 오전에 만났던 은희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핍진성은 우리가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돌아보고 다시 한 번 뜯어볼 때야 비로소 부여되는 완성된 세계의 징표와 같다. 료헤이는 남산과 서촌이라는 공간을 거닐고, 어디선과 나타나 놓치고 있던 사실에 대해 묻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자신의 영감(기자)과 대면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든 인물의 정체성(이름)을 깨달은 후에야 그것을 부여 받는다.

결말부 료헤이가 건네는 새 이야기가 은희를 등장인물로 연출된다는 점은, 때문에 매우 상징적이다. 장면 속 은희의 모습이 영화학에서 논해지는 ‘페르소나*’에 매우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는 료헤이와 은희라는 두 인물이 비로소 세계와 인물이라는 형태로써 합일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정작 자신을 찾지 못하던 은희는 료헤이와의 대화 끝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인물들을 사건 속에 밀어 넣을 줄만 알았지 그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료헤이는 그제야 완결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성장 끝에 이뤄낸 한 세계의 해피엔드인 셈이다.

* 심리학에서의 페르소나가 자아의 열등한 면이자 사회 규범을 수행하는 가면과 같은 것이라면 반대로 영화학에서의 페르소나는 작가주의적 감독이 배우를 자신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직접 내세우는 것에 가깝다. 이런 학문상의 다른 개념을 주지시킴으로써 은희를 감싸고 있던 페르소나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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