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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Oct 10. 2022

잘 될 리 없는 세계에 바치는 “잘 될 거야”라는 위로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2004) 리뷰

감독: 이경미

출연: 최희전, 서영주, 맹봉학 외

별점: 3/5


"주성쉬핑" 입사한지 4개월  경력 3년차 지영은 책임감 있고 영리하여 박사장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사회생활에 신물이  여직원이다. 한편, 지영보다 2 어리지만  직장에서 3 넘게 일해  희진은  욕심이 많고 노력파이나 눈치가 없어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너무 다른 성격과 행동양식 때문에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만 쌓인  사람에게 어느  박사장으로부터 비밀업무가 주어지고 이로 인해  사람은 어쩔  없이 매일  같이 야근을 하게 되는데..




미운 정이 무섭다는 말처럼, 누구보다 미워했던 이가 누구보다 의지할만한 대상이 되는 순간이 있다. 예컨대 철천지 원수에게   아니지만 가장 필요했던 위로를 받을 . <잘돼가? 무엇이든> 그려내는 지영과 희진의 이야기가 그렇다. 전혀    같지 않은 세계   여성의 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협화음 속에서 확립된다. 하지만  과정이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언제나 갈등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인 <잘돼가? 무엇이든>은 36분의 길지 않은 단편이지만 허투루 쓰이는 장면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주제의식이 담겨있는 영화다. 탈세와 같은 노동현실에서부터 성차별적 여성노동을 비롯한 수많은 당대 대한민국의 사회문제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화에 언급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지영과 희진이라는 두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사에 녹아든다. 러닝타임에 비해 과해 보일 수 있는 주제의식의 확장이 연출의 유려함을 통해 극복된 케이스다.

영화는 현실에 찌들어 냉소적인 지영과 열심히 하면 된다는 긍정성을 가진 희진에게 짐처럼 주어지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다룬다. 지영은 희진을 진저리 나도록 미워하지만 사실 그는 진정 분노해야  대상은 희진이 아님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이는 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행동들이 사실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지영과 희진은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며 그저 무엇 하나   가는  없는 부당한 세계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소시민 여성들일뿐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부당한 구조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한편으로는 탈세 업무에 가담하는 사회 문제의 부분집합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지 않는다. 초점은 오히려 삐걱거리던 그들의 감정선이 비로소 합일되고 연대하는 과정에 맞춰진다. 그 연대를 가능케 하는 것은 '말'이다. 작중 희진의 대사처럼, "말은 힘이 세다." 회사가 불탔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실제로 회사는 불타고 박사장은 중태에 빠진다. 희진은 자기 입에서 거짓말이 나올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몸을 못 가누며, 지영은 희진에게 자신의 불만을 말함으로써 비로소 희진에게 위로받고 그와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존댓말에서 반말로, 표준어에서 사투리로 바뀌는 그의 어투와 함께 지영은 희진을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희진의 솔직함 역시 지영에게 좋은 화답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말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장치이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시네마적으로나마 이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결말에서, 결국 희진을 받아들인 지영은   없는 희진을 이끌고 첫차에 오른다. 그들의 앞으로의 여정은 이전의 여정들만큼이나 고되고  볼일 없을 테지만 영화는 이들에게 "   거야"라는 위로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위로를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이 바로 시네마의 책임이기에.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이 흘러나오며 버스에서 졸고 있는  사람을 비추는 화면을 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저들의, 아니 저들과도 같은 우리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럭저럭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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