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년의 영화 Oct 28. 2022

가장 고전적 방식으로 전하는 현대사를 향한 환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2021) 단평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안셀 엘고트, 레이첼 지글러 

별점: 4.5/5

예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뉴욕 변두리를 장악한 제트파의 일원 ‘토니’(안셀 엘고트)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나도 멋지게  인생 살아보고 싶어제트파의 라이벌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 동생 ‘마리아’(레이첼 지글러)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를 떠나 정착한 뉴욕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부풀고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찾고자 한다. “  순간 다른  무의미해졌어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아와 토니. 하지만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를 차지하기 위한 샤크파와 제트파의 갈등은 점차 깊어지고 ‘마리아 ‘토니 자신들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단평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블록버스터 팝콘 무비의 화신으로, 때로는 정극적 할리우드 클래식을 대변하는 최후의 기수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계를 활보하는 스티븐 스필버그만큼이나 '영화의 '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제껏 각각의 분야에서 스필버그보다 훌륭한 영화를 찍어낸 감독은 많을지 모르나 스필버그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여  모든 장르에서 고르게 호평을 받아낸 감독은 그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SF, 호러, 어드벤쳐, 스릴러에서부터 애니메이션, 전기극, 코미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장르에 도전하여 성공했던 그가 이번에 도전한 장르는 뮤지컬이었다. 그것도 6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클래식  하나로 평가받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를 맡았다

그래서  결과는? 필자는 단언할  있다.  영화는 현재 받고 있는 대중적 호불호와는 별개로 마스터피스의 반열에 오르기 충분한 작품이다.  작은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특성도, 셰익스피어 비극이라는 고전적 플롯의 재전유도, 심지어는 스필버그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시대에 대한 의식까지도 훌륭하게 풀어낸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특히나 필자는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작품이 차지하는 영향력에 대해서 논하고 싶은데, 말하자면  영화는 <우주전쟁>, < 포스트> 연장선에서 현대사에 대한 문제의식과 인류에 대한 환멸을 품고 있다고   있겠다

<우주전쟁> 9. 11 대변되는 신세기적 불안에 대하여 인류가 가지는 무기력을 SF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라면, < 포스트> 20세기 후반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의 맨얼굴을 염세적인 시선으로 뜯어낸 작품이다. 그렇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혹자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기존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플롯은 그저 로미오와 줄리엣의 20세기 미국 버전 뮤지컬일 뿐인데 여기에 어떻게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지? 그러나 스필버그는 기존 플롯을 최소한으로 수정하면서도 문제의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설정하여  고전적 플롯에 '시네마적 필요성' 불어넣는다.  예시를  가지 살펴보자.

우선 짚고 넘어가야  것이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인 샤크파와 하류층 백인 노동계급인 제트파의 싸움이라는 구도다. 그들은  재개발이 예정된 웨스트 사이드 지역을 놓고 싸우지만 실상  지역은 그들  어느 쪽도 아닌 그저 권력을  상류층 백인들의 손아귀에 있을 뿐이다. 영화는  설정을 몇몇 부분에서 강조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원작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만든다. 다소 동화적이고 환상적으로 그려졌던  세력의 다툼과 갈등은 스필버그의 손을 거쳐 낭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튀기고 잔혹한 현실로 탈바꿈된다.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지역의 철거라는 재앙을 앞둔 자본주의적 현실 앞에서 낭만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거기에 더해  작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바로 '혐오'라는 주제다. 스필버그가 재해석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세계는 원작과는 달리 모든 소수자들이 노출되는 혐오의 양상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세계다. 백인은 이민자를 혐오하고, 상류층은 하류층을 혐오하며, 남성성을 과시하며 여성과 성소수자(처럼 보이는 이들) 혐오하는 이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바로  작의 배경인 것이다. 이런 혐오로 가득  사회를 응시하는 스필버그의 시선은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의 그것과는 괴리가 크다.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뮤지컬 영화라기보다는 < 포스트> 같은 사회 고발적 정극의 형태를 띠는  같기도 하다.

또한 영화는 소수자들이 겪는 불편을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해 의도적인 연출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부러 생략된 작중 모든 스페인어 대사의 자막이다.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말을 "라던 미국인들의 기본적 마인드를 비판하기 위해 스필버그는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하는  있어 적지 않은 불편을 느낄 필요가 있음을 당당히 요구한다. 그로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정치, 사회적 윤리성은 비로소 완성된다.

또한 스필버그는 이런 혐오의 양상이 단지 그 시절의 문제가 아니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임을 확실히 한다. 작중 드러나는 이민자 혐오,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의 기제들은 현재에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며 특히 최근 몇 년간은 거센 백래시에 직면하기도 했던 주제가 아닌가. 이런 문제의식은 영화 속에서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웨스트 사이드를 둘러싼 두 세력의 처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앞서 혐오로 가득 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더 포스트>를 닮았다면 이런 진보 없는 세대에 대한 무기력은 <우주전쟁>이 보이던 애티튜드를 닮았다. 스필버그는 이러한 혐오로 가득찬 사회의 무기력이 2천년대 초반 당시 9. 11을 겪은 미국인들의 불안만큼이나 큰 사회문제라고 나름대로 진단한 것이다. 이로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21세기의 무기력을 담은 시네마와 20세기의 추악한 면을 담은 시네마 사이에서 합일을 이루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반추하는 시대적 시네마가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 과연  완전히 새로워지고 동시에 숨이 막힐 정도로 막막해진 '웨스트 사이드의 이야기' 끝에는 어떤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까? 스필버그의 대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굳이 논하지 않겠다. 스포일러를 않기 위함도 있지만 보다  이유는 영화를 관람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기 위함이다. 21세기적 셰익스피어 비극의 무대가  미국 현대사의 세계 과연 희망은 있을 것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관람한   결론을 각자 논해보도록 하자.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비극이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되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