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구찌>, 리들리 스콧 (2021) 단평
하우스 오브 구찌 (2021)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자레트 레토 외
별점: 2.5/5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던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
단평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하우스 오브 구찌>는 파트리치아 레지아니가 구찌 대주주가 되기 위해 남편인 마우리치오 구찌를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리들리 스콧은 그가 연출한 영화들에서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무심한 듯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며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동안 변화하는 그 시절 패션의 흐름을 오롯이 화면 속에 담아내고자 한다. 레이디 가가와 애덤 드라이버라는 두 주연의 호연도 한층 영화를 몰입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영화의 각본은 각색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디테일이 희생되어 인물들의 감정선에는 제대로 된 공감조차 하기 어려웠다. 두 시간 30여분의 긴 러닝타임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깊은 서사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저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나) '구찌'라는 세계적 브랜드명이자 한때 누군가의 이름이었던 두 음절의 단어만이 허망하게 크레딧 아래로 사라질 뿐이었다.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를 통해 '구찌'가 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그것을 파괴해버린 마우리치오와 그토록 다른 일가족들이 지켜내려 했지만 그토록 허무하게 자멸해버린 구찌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려 한 듯하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영화적 사건'을 영화화하기 위해 그저 사실의 재현만이 필요할 뿐이라 믿었던 리들리 스콧의 순진함으로 인해 이토록 뼈아픈 실패를 거두고 말았다.
제목에서도 쓴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중에서도 '어떤 현실'의 사건들은 마치 짜인 각본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그 자체로 영화적이다. 그러나 사건이 '영화적'인 것과 그것을 실제로 '영화화'하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존재한다. 제 아무리 극적인 사건일지언정 작가에 의해 재구성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영화가 될 수는 없는 탓이다. 리들리 스콧의 패착은 바로 그 점을 간과한 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충분히 극적이고 충분히 참혹한 이 사건을 영화화함에 있어서 더 이상의 각색과 재구성은 필요치 않다고 본 듯하다. 어쩌면 그에게는 참혹한 비극을 불행 포르노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모종의 선의로 가득 찬 결의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가 보인 방법론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훌륭한 재현이네. 그런데 왜 이게 하필 영화로 개봉해야 했지? 그냥 르포나 다큐멘터리였어도 충분하지 않나?" 선천적으로 영화적임에도 영화는 되지 못한 이야기를 목도하며 우리 중 이런 생각을 한 관객이 적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영화감독에게 있어 가장 치욕적인 일 중 하나는 그의 영화가 '영화 같지 않다'는 평을 듣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을 가능성도 없는) 리들리 스콧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본 작은 그런 치욕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는 사실의 충실한 재현과 그 시절을 온전히 도려내어 영상 속에 가두겠다는 일념 하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영화답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현실보다 영화적인 어떤 현실 앞에서, 그는 현실보다도 못한 영화를 직조해냈다. 그 현실이 너무나도 예리해서 그것을 담으려는 카메라조차 피해 도망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