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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Oct 31. 2022

어떤 현실은 때로 지나치게 영화적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 리들리 스콧 (2021) 단평

하우스 오브 구찌 (2021)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자레트 레토 

별점: 2.5/5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이름 구찌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없었던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


단평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하우스 오브 구찌> 파트리치아 레지아니가 구찌 대주주가 되기 위해 남편인 마우리치오 구찌를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다. 리들리 스콧은 그가 연출한 영화들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무심한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며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동안 변화하는  시절 패션의 흐름을 오롯이 화면 속에 담아내고자 한다. 레이디 가가와 애덤 드라이버라는  주연의 호연도 한층 영화를 몰입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영화의 각본은 각색이라는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이었으며  과정에서 많은 디테일이 희생되어 인물들의 감정선에는 제대로  공감조차 하기 어려웠다.  시간 30여분의  러닝타임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깊은 서사를 찾아볼  없었으며 그저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나) '구찌'라는 세계적 브랜드명이자 한때 누군가의 이름이었던  음절의 단어만이 허망하게 크레딧 아래로 사라질 뿐이었다. 리들리 스콧은  영화를 통해  '구찌' 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그것을 파괴해버린 마우리치오와 그토록 다른 일가족들이 지켜내려 했지만 그토록 허무하게 자멸해버린 구찌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려  듯하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영화적 사건' 영화화하기 위해 그저 사실의 재현만이 필요할 뿐이라 믿었던 리들리 스콧의 순진함으로 인해 이토록 뼈아픈 실패를 거두고 말았다.

제목에서도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그중에서도 '어떤 현실' 사건들은 마치 짜인 각본이라 해도 믿을  있을 만큼  자체로 영화적이다. 그러나 사건이 '영화적' 것과 그것을 실제로 '영화화'하는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존재한다.  아무리 극적인 사건일지언정 작가에 의해 재구성되지 않는   자체로 영화가  수는 없는 탓이다. 리들리 스콧의 패착은 바로  점을 간과한 데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충분히 극적이고 충분히 참혹한  사건을 영화화함에 있어서  이상의 각색과 재구성은 필요치 않다고  듯하다. 어쩌면 그에게는 참혹한 비극을 불행 포르노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모종의 선의로 가득  결의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가 보인 방법론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훌륭한 재현이네. 그런데  이게 하필 영화로 개봉해야 했지? 그냥 르포나 다큐멘터리였어도 충분하지 않나?" 선천적으로 영화적임에도 영화는 되지 못한 이야기를 목도하며 우리  이런 생각을  관객이 적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영화감독에게 있어 가장 치욕적인   하나는 그의 영화가 '영화 같지 않다' 평을 듣는 것일 테다. 그러나 ( 글을 읽을 가능성도 없는) 리들리 스콧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작은 그런 치욕을 받아도  말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는 사실의 충실한 재현과  시절을 온전히 도려내어 영상 속에 가두겠다는 일념 하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영화답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현실보다 영화적인 어떤 현실 앞에서, 그는 현실보다도 못한 영화를 직조해냈다.  현실이 너무나도 예리해서 그것을 담으려는 카메라조차 피해 도망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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