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판 남자>, 카우타르 벤 하니야 (2021) 단평
피부를 판 남자 (2021)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
출연: 야흐야 마하이니, 모니카 벨루치, 데아 리앙, 코엔 드 보우 외
별점: 3/5
※ 이 작품은 살아있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 자유, 돈, 명예를 드립니다! 당신의 피부를 팔겠습니까?
단평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번 글은 이례적으로 가사를 인용하며 시작해보도록 하자. 사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타블로의 솔로 1집 <열꽃>의 가사들이 겹쳐 보였다.
"아름다움이 추악함으로부터 왔다면, 아름다움인지." (타블로 - '출처' 중)
"Don't act like you know me 'cause you recognize me. You sell my record, not me"
- 날 알아본다는 이유로 날 아는 듯 행동하지 마. 네가 판 건 내 '기록'이지 내가 아니니까. - (타블로 - 'Dear TV/해열' 중)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접하지 않았더라도 위의 가사만 보면 알 수 있겠듯이, <피부를 판 남자>는 예술의 범주에 대한 영화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이 영화를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 자유와 예속의 비대칭을 묘사하며 동시에 예술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난민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유럽에서 정착하지도 못한 채 거리를 전전하던 샘을 이용해 세계적 예술가 제프리는 예술사에 유래가 없는 작품을 제작해낸다. 바로 샘 자신의 몸을 이용한 작품 말이다. 샘의 등에 유럽 비자를 타투로 새긴 제프리는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자유를 팔고서야 아이러니하게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된 난민이라는 아이러니를 의도했다고 밝힌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영화는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그렇지 않은지,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인격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특히나 풍요로운 유럽에서 예속된 상태로 지내는 샘과 전쟁으로 생명이 위협받는 시리아에서 자유로운 상태인 그의 가족, 그리고 외교관과 결혼하여 둘 모두를 잡은 듯보이지만 사랑하는 사랑을 잃은 샘의 약혼녀 아비르까지. 이들의 대비는 나름대로 진중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과연 이들 중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추한 것인지에 대한 다소 과감한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일순간에 설득력을 잃고 맥없이 흩뿌려진다. 이러한 평가의 이유는 상당 부분 영화의 결말에서 기인한다. 시리아나 레바논 등 내전으로 실존을 위협받는 난민들의 처지, 그것을 단순히 흥미로운 예술적 주제로 가볍게 치부하는 제1세계 백인들의 시선, 샘에게 인격적 자유와 사회경제적 자유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세계의 잔혹한 치킨게임까지. 이토록 풀어낼 소재가 많았던 본 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든 주제의식들은 다소 미흡하고 어찌 보면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하는 영화의 후반부로 인해 순식간에 감흥이 반감되고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시의적절하고 생각할 여지가 많은 주제였음에도 그것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했던 영화인 셈이다. 초중반의 과감하고 대담한 연출로 인해 한껏 기대감이 커졌던 탓에 보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마무리였다. 결국 <피부를 판 남자>는 예술과 사회에 대한 유효한 문제의식을 전달한 수작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아쉽게도 놓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