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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04. 2020

사랑이 떠난 자리엔

사랑이 떠난 자리엔 잔인함이 썰물처럼 밀려들어온다. 공유한 시간에 비례하는 날카로움은 깊숙하고 확실하게 마음을 도려낸다. 떨어져 나가는 덩어리에도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 결정을 통보하는 쪽은 냉정하다. 행여 빈틈을 보이면 무너질까 굳건하고 단호하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이별의 말들. 그것들은 하룻밤에 떠오른 게 아니다. 마음 한편에서 맥주처럼 조용하고 의뭉스럽게 숙성된 것이다. 빛이 들지 않는 그 방의 존재를 눈치채긴 어렵다. 작별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 상황을 통보받는 쪽은 무방비 상태에서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감정의 홍수에 상호존중은 떠내려간다. 폐허가 된 자리엔 상실의 공허와 시간의 잔해가 뒤죽박죽 섞여있다. 떠난 이와 남겨진 흔적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따라잡으려는 가슴을 머리가 말린다. '마음이 떠난 상대를 붙잡는 것은 지난주 당첨번호로 로또를 사는 것만큼 의미 없어'. 소매로 눈물을 훔치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 나는 이렇게나 활짝 웃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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