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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26. 2019

스며듦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나 스며들고 있다. 묻어나기도 하지만 스며드는 것은 조금 더 불편한 관계로의 일방적인 질주에 가깝다. 스며들 때는 도무지 동의를 구할 수도 없고 무례한 기분이 든다. 한 곳에 오래 지체할 수 없음을 앎으로 재킷을 걸쳐들고 거리로 나선다. 나는 검은 새들이 자동차를 몰고 조용히 밀려드는 분홍색 카페로 달려간다. 잿빛 벨벳 카우치에 앉자 부유한 새들의 부리가 나를 향한다. 화장실로 튀어달려가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뜬 채 짧은 비명을 지른다. 잠시였다고 생각했는데 나가보니 차갑고 파란 밤이 되어있다. 달빛 아래 나는 다시 벨벳 카우치로 돌아간다. 검은 새들은 동공을 열고 열심히 무언가를 마시고 있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선다.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얼기설기 걸려있는 쇼윈도에 충동적으로 찰싹 붙어 시선을 맞추자 주인이 나와 화를 낸다. 내부를 왜곡시키는 배타적인 유리엔 내 불결한 손자국이 묻어 있다. 가게로 들어가 패션 희생자가 되어버릴까 하는 미운 생각을 한다.  갑자기 주머니 속 전화가 울린다. 나는 낄낄 웃고 쇼윈도에서 떨어져 택시를 잡는다. 조용히 전화를 받자 친구가 어설프게 기계음을 흉내 내어 말한다.


"채소가 먹고 싶어."


결국 오늘도 노란 내 집의 연두색 식탁에 앉아 친구와 시니컬하게 채소를 먹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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