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통에 빠진 쥐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아빠가 언슬조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 그동안 어떻게 커리어 패스를 계획하고 실행해 왔냐는 질문이 있었어.
많은 젊은이들은 대학에서 전공을 고민하고, 취업을 하고, 또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하고 시류의 변화를 살피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어.
아빠는 커리어 패스 같은 건 없었고, 마치 우유통에 빠졌다가 살아난 쥐처럼 그때그때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덧 이 자리까지 왔다고 답했어.
사실은 아빠도 산업기사, 기사 자격증을 따고 지방 중견기업에서 대기업 이직까지 커리어패스를 짜지 않았던 건 아니야.
그런데 꿈꾸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입사한 첫 직장에서 SW개발과 서버운영이 동시에 가능한 인재라며 서버운영을 맡기더군. 정말 개발자가 꿈이었는데 회사가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아이러니하게도 입사동기들은 실력이 부족해서 개발팀에 남았고…
그 후엔 IMF를 겪으며 벤처에 합류했고, 기술기획과 제품기획, 기술영업 분야로 회사가 필요하다는 모든 영역을 맡았지.
‘내 꿈은 개발자였는데… 그래도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해야지.’
하며 안분지족 하며 살다가 네가 알듯이 사업을 했고, 실패 후에는 15년간 몸담았던 IT업계를 떠나서 경영컨설턴트로 살게 됐지.
이십 대의 나는 내가 경영컨설턴트가 될 줄 몰랐단다.
그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각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종착역이 경영컨설턴트였던 거지.
지금 서랍에서 고이 잠자고 있는 기사 자격증이 아빠 대학시절엔 졸업논문이 대체되는 귀한 것이었고, 교수님들은 평생 밥 벌어먹고 살 귀한 밑천이라고 하셨지. 지금도 저 자격증을 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삶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단다.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고, 그 분야의 역량을 키워 그 길을 가면 잘 먹고 잘 살리라.’는 어른들의 조언은 우매한 소리란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하냐면, 우유가 버터가 될 정도로 발버둥 쳐서 우유통을 빠져나온 쥐처럼!
건투를 빈다.
사랑하는 아빠가.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