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갖게 되는 신념이라는 이름의 독선

젊다는 것은 틀려도 된다는 까방

by 워크홀릭

사랑하는 나의 작은 아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젊은 날, 아빠는 아주 독선적인 젊은이였으며 또래들 또한 그러했노라고 추억한단다.


에피소드 1. 민정당 선거 피켓 든 놈 하고는 친구 못한다!

아빠 친구 중에 유전공학과에 다니는 K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시험 문제 중에 “비커에 든 물이 오염되었는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옆 자리 친구에게 먹여본다.”라고 답을 썼다가 F학점을 받은 놈이었다. 이 정도의 가벼움(?)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하루는 군부독재정당인 민정당 유세장에 가서 피켓알바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길래 절연해 버렸다.

K는 아빠를 좋아해서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어찌 알고 안부편지도 보내오고 했는데 아빠는 냉담하게 답신을 하지 않았지. 이제라도 연락이 된다면 맛있는 안주 놓고 함께 술 한 잔 곁들여 살아온 얘기를 하면 좋을 텐데 어찌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 후회가 크다.


에피소드 2. 드래곤볼과 싸우는 운동권

대학교 1학년 때이던가 아빠가 독서토론회 동아리에 있을 때였다. 그때는 동아리마다 수시로 모집 대자보를 붙였단다.

큼직한 전지에 대자보를 쓰려고 하는데 다른 동아리들과는 달리 쓰고 싶어서,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부터 드래곤볼까지 왕성한 독서를 원하는 자는 오라!” 이런 식으로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음 날 보니 누가 드래곤볼이란 단어에다가 빨간색을 찍찍 그어 놓고 일본제국주의를 찬미하는 만화라고 써 놨더라고, 지금도 생각하면 그 덜떨어진 운동권 녀석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기도 한데, 당시 운동권이었던 네 엄마와 함께 살고 있으니 하면 안 될 것 같구나.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 새로운 노트북을 받고, 휴대폰을 산 기쁨처럼, 대학에 와서 여러 가지 사상을 공부하고 신념 있는 인물들의 삶에 감탄하는 기쁨도 있지.

아빠의 스무 살 시절처럼 너와 네 또래들도 같은 시기를 건너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사람의 본질이 중요하지 여물지 않은 사상을 매몰차게 평가하지 말고, 행여 불편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 바로 처단(?) 하지는 말거라.

너 또한 신념이 있고, 주장하고픈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 있게 내놓고 대화하되, 언제나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그것을 인정하면 된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틀리고 잘못된 결정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무진장 있다는 것이니까.


2025.12.16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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