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기일
사랑하는 베네딕토,
아빠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당시에는 신학기가 되면 학급별로 환경미화를 했다. 워낙 못살던 시절이니 대청소 좀 하고 학급 게시판에 시간표나 새로 만드는 정도였지. 그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꽃을 가져다 놓으면 좋지 않겠냐고 누가 가져올 수 있냐고 하자 학급 전원이 “저요. 저요!”를 외치며 손을 들었지.
선생님은 아빠를 지목했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단다.
다음 날 아침, 환경미화를 위해 꽃을 가져가야 한다고 하니 할머니는 철없는 것이 꽃집 하나 없는 이 산골에서 어떻게 꽃을 사가냐고 했고, 아빠는 지지 않고 산과 들을 가리키며 저기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이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대들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길도 없는 이 산 저 산을 뛰어다니며 들꽃으로 만든 커다란 꽃다발을 만들어 주셨단다. 할아버지 앞섶에 가득한 이슬과 풀잎들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당연하다듯이 신나게 학교로 향했던 일이 생각나는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는 아빠의 인생 곳곳에서 이 산과 저산의 가시덤불을 헤치고 꽃을 꺾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언제나 너를 사랑으로 감싸주시던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평생을 쉼 없이 일하셨던 할아버지께서 하늘에서 평안히 쉬실 수 있도록 기도해 주렴.
2026.4.2
사랑하는 아빠가.
<너는 어릴때부터 예쁜 것을 좋아했는데, 꽃을 들고 다니길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