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시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by 포 청천










42일만에 드디어 아기와 떨어져 혼자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아기와 아기 할머니를 두고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근처 카페를 찾아들어갔다. 심장을 두드리는 팝음악과 사람들의 화기애애한 속삭임들이 넘친다. 카페인 한 모금이 짜릿하다. 오롯이 나 혼자 있는 평온함, 예상 가능한 안정감, 내 취향, 내 선택, 내가 좌우하는 시간과 움직임, 내 삶을 내가 쥐고있다는 느낌이다. 나와 보니 알겠다. 나 정신상태가 이상했다. 왜 이렇게 된걸까?





아기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기는 모든 시간, 양육자가 자신에게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꼭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있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찾는 딩동벨과 같은 울음소리다. 돌아서면 딩동, 딩동, 딩동!


이 딩동 소리는 내 인생에서 ‘원래’ 취하고 있던 기본값들을 부수고 우선예약을 넣는다.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 샤워를 한다, 글을 쓴다, 집 밖을 나간다, 등의 아주 당연한 것이 건건이 점검받는다. 공기 같이 흐르던 행동들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없는데, 공부를 하거나 일을 도모하는 것은 말해 뭐해.





아기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몇번이고 허공에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많이 헤매이고 울다지친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베이비 시공간’에 있다는 것이다. 내 이름 석자가 아니라 아기 이름 석자 그의 엄마로서 살아야하는 그 시간, 공간 안에 나는 갇혀있었다. 자아가 강한 것이 이렇게나 내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30년 넘는 세월동안 아침에 눈 떠서 맞이한 내 시간은 의심 없이 내가 썼다. 그래서 나의 시간은 내 것이고, 나의 하루는 내가 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되어도 나를 위한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내 시간에는 어떤 것을 할지를 짜두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베이비 시공간에 들어가면서 내 인생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육시간은, 내 시간과 아기의 시간이 아니다. 양육시간은 보육시간과 대기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기시간인데 이게 대기시간인줄 모르고 자신의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아기가 방해물로 전락한다. 아기를 방해물로 만드는 것은 나의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에 아기가 들어와서, 함께 꾸려가는 것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베이비 시공간에서는 내 인생은 없고 아기 인생에 내가 들어가서, 서포트하는 것이었다.


내가 결정했잖아, 라고 마음을 옥죄어보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나도 먹고, 자고, 싸야하는데, 그 기본 욕구를 미뤄야하니 채찍만으로는 조금... 어렵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도 남들처럼, 그때가 좋았다고 별일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하루가 너무 길다. 시간아 달려라.





42일 만에 탈출했는데, 결국 아기와의 생활을 곱씹는데 2시간을 몽땅 썼다. 이렇게 내 삶과 아기의 삶이 합쳐지나 보다. 이러다 SNS 프로필에 아기사진이 자신인 것 마냥 올라가고, 이러다 '아이를 위해서'라며 아이의 꿈에 간섭하고, 이러다 드라마처럼 외치는 것 아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아, 그것만은. 그건 너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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