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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May 07. 2022

초록, 차 오르다.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을 가르치며_

우르르 학생들이 몰려나가고 몰려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교실 밖으로 나가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들을 만났다.  유난히 마음이 가고 기대가 큰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합격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라, 멋진 ‘한 사람’으로 성장할 거라는 기대감 같은것 때문이리라. 우리는 만나자마자 불쑥 손부터 잡았다, 일단 손부터.     


“와~! 오랜만이야. 샘이 맨날 수업하느라 얼굴도 못 보고 미안해.”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키가 나보다 훌쩍 큰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좁은 학원 데스크 앞에 서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어젯밤 침대 머리맡에 붙여둔 누드크로키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내가 그린 건데 어때? 인체 그리는 게 재밌더라.”

역시 그림을 전공하는 아이들이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 선이 매력 있어요. 가슴 아래 선이 왜 두 개예요?”

“으응. 하나는 잘못 그린 건데 안 지웠어. 실수한 선도 남기고 싶더라고.”

“맞아요. 맞아요. 세상에 틀린 선은 없어요. 선생님 그림은 구도가 특이해요. 선생님 또 그려요.”


우리는 인체 소묘 예찬을 늘어놓다가, 모든 인체는 아름답다고 입을 모았다. 인물을 그리다 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것을 알게 된다. 자세히 보다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다. 눈이 작으면 작은 대로, 코가 낮으면 낮은 대로 나름의 조화가 있다.     

빨리 만 스무 살이 되어 나랑 생맥주 한잔하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한 학생이 있다.록, 재즈 등 다양한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는 요즘 제프 백 기타 연주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마치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기르는 마음으로 이 친구가 자라기를 기다린다.

나는 재빨리, “제프 백은 말이야 바로 이 노래지. 내가 LP bar에 갈 때마다 듣는 노래가 바로 Cause we’ve ended as lovers야. 같이 듣자.” 하고서는 우리 넷이 옹기종기 붙어 서서 유튜브로 제프 백을 만났다. 이 시간을 같이 공유하는 시간. 문득 아주 조금, 눈물이 났다.     


아이들은 새로 맞춘 내 동그랗고 빨간 안경을 가리키며 척척박사 안경이라고 했다. 나는 뭐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다만 그게 정답인지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다. 누군가, 불쑥, 그림이나 음악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며, 예술을 모른 채 인생을 산다는 건 정말이지 폭폭한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수다는 사방팔방으로 튄다. 한 친구가 “선생님도 싫은 사람 있어요?”라며 돌발 질문을 했다. 나는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 빼고는, 사람들은 저마다 매력이 있다고 했다. 실제 그렇다. 괜히 권위나 지위를 내보이려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무척 초라하게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은 폭풍 문자를 보내왔다. 반갑고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갈증을 해소했노라고. 예술과 삶에 관해 ‘무작정 수다하기’가 즐거웠었노라고 깜찍한 이모티콘과 함께 까똑까똑 문자가 날아왔다. 아이들의 문자에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으로 답했지만, 사실 이 대화에서 한껏 위로를 받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휑하게 비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서서히 초록으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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