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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May 07. 2022

화요일 정오,이태원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에서

-나는 근사한 하루를 살아간다. 1-

세 번째 매거진의 제목은 하루를 근사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뒤죽박죽 일상에서도 찾아보면 보석같은 순간이 있으니까요. 눈부신 것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고 근사한 이야기 함께 나누겠습니다. 슬픈 일도, 무거운 일도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모든것이 근사합니다.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약속 장소는 이태원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였다. 시끄럽지 않게 공간을 가득 채운 Abba 노래와 노란색 <오리지널 팬케이크>이라는 로고가 80년대로 돌아간 듯했다. 이곳이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있는 정통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의 최초 해외 분점이라고 장소를 정했던 친구가 말해주었다. ‘짝퉁’ 천국인 이태원 거리에 ‘오리지널 분점’이라니 아이러니이다. 휙 둘러보았지만 일행은 보이지 않았고, 몇몇 테이블에 자리 잡은 스무 살 남짓 젊은이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접시가 깨질 듯 웃고 있었다. 맞은 편 테이블엔 금테 안경을 쓴 노신사가 조용히, 마치 주위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듯이 혼자만의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이 공간에서 스마트 폰을 보지 않고 식사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불과 일 미터 차이를 두고 이쪽과 저쪽은 차원이 다른 우주 같았다. 그 곳은 시간도 잠시 멈춘 듯했다.     


눈에 잘 띄도록 출입구 쪽 세팅된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탁자와 같은 방향인 주방에선 무언가를 한창 튀기고 있었는데, 치이익하는 소리가 군침을 돌게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릇 씻는 소리와 물소리가 요란했고 옆 테이블의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히는소리까지, 80년대 초록색 출입문이 있던 학교 앞 돈가스 집 분위기이다. 나에게도 닭 벼슬 헤어스타일, 하얀 목 폴라티를 받쳐 입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니까 지금 흐르고 있는 A-Ha의 TAKE ON ME 뮤직 비디오가 한창 유행했고, 잘생긴 Pet Shop Boys가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스크린’과 같은 각종 잡지를 사 모으곤 했던, 그때 말이다. 잠시 입 안으로 TAKE ON ME를 따라 불렀다.     


혼자 기다리는 줄 알았더니, 저쪽 안 보이는 곳에 일행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합석한 우리는 커다란 출석부 같은 메뉴를 들고 열심히 주문을 했다. “오리지널 세트요!!” 테이블엔 곧 버터 향 진한 팬케이크 ‘더미’- 잘 구워진 포근한 팬케이크는 아기 궁둥이 같기도 했다-, 바싹하게 튀긴 베이컨, 노른자가 살아있는 계란 프라이 등이 빈틈없이 차려졌다. 악마의 유혹인가. 아무리 채식 위주의 건강식을 두 달째 이어 왔으나 진한 버터와 메이플 시럽에 흥건히 적셔진 팬케이크를 한 입 맛보는 순간, 초록 문 경양식 집에서 잘 튀겨진 첫 돈가스를 먹던 그 날로 돌아갔다. 한결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메이플 시럽에 적셔진 팬케이크처럼, 달짝지근한 어떤 기분으로 젖어 들었다. 음악들도 한몫했다. 화요일 정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엔 올리비아 뉴튼존, A-ha에 이어 Abba까지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높지도 낮지도 않게 흐르고 있었다.    

 

옆자리로 눈길이 갔다.

금테 노신사는 여전히 신중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치 팬케이크를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진지한 태도이다. 그의 자리에서는 나이프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주변의 소음은 개의치 않는 듯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골몰하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수업을 마치고 긴 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가던 길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림자는 점점 길어졌고 상념도 따라 짙어졌다.     

두 번째 접시의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한껏 붓고 있던 친구가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고 유리잔을 땡그랑 땡그랑 쳤다. 나는 대답 대신 시럽이 뚝뚝 떨어지는 팬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음악은 비틀즈의 Hey Jude 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화요일 팬케잌 하우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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