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Dzud #이야기
2024.09.30
오늘도 어김없이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어제보다 가을을 닮았다. 이불 속으로 파묻히고 싶은 서늘함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기분이 좋다. 도시에서도 기쁜 순간들은 있지만 지금 기분은 그때와는 무언가 다르다. 차이를 고민하고 있는 지금도 계속해서 닭과 새의 목소리가 창문을 넘어온다. 닭 우는 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가끔씩 짖는 마을 개들의 소리. 이 자그마한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았구나. 도고에서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도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이 늘 선명하다. 그래서 도고에서는 기분이 좋다.
긴 시간 동물들과 함께 살아온 몽골에서는 가축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여긴다. 동물을 도살할 때는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해진 방법을 따라야 한다. 몽골제국의 법률에는 ‘가축을 함부로 도살한 자는 똑같은 방법으로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을 정도이니 이들에게 가축은 단순히 동물이 아닌 유목생활을 함께 살아내는 동반자이다.
지난 겨울 끔찍한 ‘쥳(зуд, Dzud)’가 몽골을 덮쳤다. 한국에서는 ‘조드’라고 말하지만 현지에서는 ‘쥳’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 조드는 ‘재앙’을 뜻하는 몽골어로, 겨울에 발생하는 기후 재난을 말한다. 조드가 닥치면 기온이 갑자기 영하 40~50℃까지 떨어지고 거센 바람과 폭설, 우박이 동반된다. 2024년 2월 몽골 국토의 90%는 조드로 인해 두꺼운 눈으로 뒤덮였다. 조드는 유목민들의 말, 야크, 염소, 양, 낙타, 소를 집단 폐사시키고 쌓였던 눈이 녹는 봄이 오면 홍수로 돌변한다.
몽골 현지인에게 들은 조드는 단순한 폭설 그 이상이었다.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은 경제적으로 취약해지고 더이상 초원을 옮겨 다니며 살아갈 수 없다. 전재산과 삶의 방식을 한순간에 잃어 버린 셈이다. 때문에 이들은 경제적인 부담과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이중 일부는 도시 근처에 정착하여 생계를 이어가는데 추운 겨울을 이겨낼 연료를 구입할 수 없으니,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동물의 분뇨를 땔감으로 사용한다. 점점 심하게, 자주 발생하는 조드 때문에 도시 근처에 부랑하는 자들이 늘어나면서 겨울철 연료 문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매연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이유다.
어디든 조금만 슬쩍 들여다봐도 쏟아지는 기후재해 이야기들. 가파르게 심각해지는 문제 앞에 무력함도 커질 때가 있지만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10년 된 텀블러를 가방 속에 챙기고 3년 된 핸드폰을 조금 더 쓰는 일, 쌓여있는 메일함을 지우고 트리트먼트 바를 쓰는 일. 유기농 수입 오렌지보다 우리 땅에서 자란 사과를 먹는 일(이제 사과 농가도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많이 옮겨갔다고 한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소소한 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닐까 경계하면서도 그나마 나은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