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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레일바이크 정류장으로 쓰이는 도고온천역이 기차역으로 일했던 1960년 대에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하루에 서 너번 기차가 다녔는데 아침 7시 반쯤 되면 출퇴근 하는 사람들, 학교가는 학생들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도고의 학생들은 온양으로 예산으로 더 멀리까지는 천안으로 학교를 다녔다.
“예전에 기차는 기관사들이 석탄을 때면 그 힘으로 갔어. 석탄도 저 그 기관사들이 다 타면 버리잖아. 버리면 그 중에 안 탄 게 있어. 그러면 이제 빠께스(바구니)를 들고 가서 골러. 여기 역전서 한 2km 가면 빠께스가 꽉 차. 반 탄 걸 골라서 철공장에 갖다 주면 한 500원 될겨. 그때 500원이면 한 5,000원 되지. 그런 거 가지고 연필도 사 쓰고 가게가서 사탕도 사먹고 내가 그랬어.”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던 역전을 들려주는 윤신 할아버지의 눈이 점점 빛난다. 역전은 사람만 나르지 않았다. 탱크도 궁밭을 통했다. 탱크를 옮기는 칸에는 미군과 한국군이 두 세 명씩 보초를 섰다.
“미국 사람 만나가지고 뭐라고 하면 쪼코렛 뭐 저 사탕같은 거를 줘. 그러면 애들이 막 따라가지. 하여간 뭐 아주 많이 읃어 먹고 그랬어.”
궁밭 역전은 서울 사람들에게도 중요했다. 서해에서 나는 소금이 궁밭을 통해서 서울로 왔기 때문이다. 궁밭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선장이라는 지역이 있다. 선장에는 배가 들어오는데 서산, 태안에서 만든 소금을 싣고 오는 배였다. 그럼 선장에서 말, 소가 끄는 차로 소금을 옮겨 싣는다. 차가 조금 더 좋으면 지프차도 있었다. 소금으로 가득 찬 차들이 궁밭으로 오면 궁밭 역전에서 소금이 철도를 통해 서울로 가고 장안, 군산, 대전으로 갔다고.
“역전에 소금이 산더미마냥 쌓여 있어. 비맞으면 녹으니까 소금을 덮어. 덮어도 비오면 녹아서 바닥에 보면 갠수(간수)가 흘러. 그럼 그 물이 모이게 바닥을 파. 새벽에 4시나 5시에 가면 찌끄래기가 가라 앉아서 아주 깨끗해. 국자로 퍼가지고서 그 때는 주전자, 타레박(두레박), 큰 병 뭐 소주 담는 병을 챙겨 가 담어. 그런 다음에 두부 장수한테 갠수를 팔어.”
간수가 찰랑이는 주전자와 석탄으로 가득 찬 바구니는 아이들의 간식이 되고 옷이 되고 반찬이 되었다.
*궁밭 세번째 이야기, 예산 불란서 신부님은 다음주 월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