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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Feb 10. 2019

우당탕탕 독립 적응기 - 1

To be continued.

파리 유학은 나의 첫 해외 장기 체류이자 나의 첫 독립이다. 대학이며 회사며 다 서울에서 다녔던 덕에 나이 서른이 되도록 독립을 하지 않았다. 독립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던 때도 있었지만, 사실 딱히 명분도 없고 굳이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막연히 독립에 대한 동경만 있는 채로 드디어 이곳 파리에서 집을 계약하고 바로 어제저녁 입주를 하게 되었다. 아니, 고작 ‘어제저녁’이었다니 마치 이미 한 달은 산 것만 같은 기분이다.

독립의 첫 감상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했나?’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첫 번째 당황이 시작됐다. 나는 마치 공기처럼 휴지가 ‘당연히’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침부터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 길로 집 근처 마트에 가서 휴지와 설거지용 세제, 빨래 세제, 그리고 아침으로 먹을 우유와 시리얼 등을 사 왔다. (사실 아침에 마트에 가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원래는 이케아를 가기 위해 11시에 출발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려 했으나 예기치 않은(?) 사태로 한 시 반에 출발하는 다음 셔틀버스를 노리기로 했다. 집에 와서 빨래를 돌리고, 우유를 부은 시리얼과 바나나를 먹으며 전기 회사에 용감하게 전화했지만 소통 불능으로 장렬히 실패했다. 조금 더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하기로 했다. 내가 하도 못 알아듣고 물어보니까 전화받으시는 분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죄송했다. :(


일단 집을 꾸리는 데 가장 시급하다고 느낀 건, 아파트 청소와 이불보 장만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는 신발을 신고 방을 드나들기 때문에 어제 집을 계약할 때 나와 집주인 셋, 그리고 작은 가구들을 설치하러 오신 아저씨까지 네다섯 명의 사람이 왔다갔다한 흔적을 지우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청소기와 대걸레! 이건 15구에 위치한 Beaugrenelle 쇼핑센터에서 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불보와 빨래 건조대, 옷걸이 등 잡다한 생활 용품은 이케아에서 구매할 예정이다. 이케아는 주로 파리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우리 집이 남쪽이니, 나는 남쪽에 있는 IKEA Thiais를 가야 한다. 이곳에 가려면 14구쯤에 위치한 77 boulevard Saint-Jacques에서 셔틀버스를 타는 게 가장 편하다. 아니면 RER 두 번 갈아타야 되고, 오래 걸리고 암튼 복잡하다. 그러니까 나는 집에서 30분 정도 걸려 셔틀버스 타는 곳에 가야 하는 거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1시 30분 차를 타러 갔으나 웬걸, 이미 만석이라 못 탔다. 나는 주말에는 한 타임에 셔틀버스 2개 운영한다고 본 것 같은데 아니었나 보다. 다른 버스 없냐고 물어봤는데 기사 아저씨가 없다고 했다. 좌절.

리빙포인트 : 이케아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출발 시간에 맞춰가지 말 것. 미리 가서 차에 타서 기다리자.

그다음 버스는 4시 30분이어서 오늘은 이케아 가는 걸 쿨하게 포기하고 행선지를 Beaugrenelle 쇼핑몰로 바꿨다. 무지하게 큰 이 쇼핑센터는 지하 1층에 무인양품, 자라 홈을 비롯해 집을 꾸미는 데 필요한 가구 및 소품을 파는 다양한 가게들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Darty라고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있다. 핸드폰, 컴퓨터, 음향 기기부터 청소기, 헤어 드라이기, 가습기, 커피머신 등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종류의 가전제품을 판매한다. 여기서 청소기랑 헤어드라이어, 고데기를 샀다. 청소기 살 때는 도저히 너무 답이 안 나와서 엄마한테 SOS를 쳤다. 카카오톡으로 엄마한테 컨펌받은 걸로 구매! 진짜 뭐가 좋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참고로 3층에 Maison du Monde도 가볼만하다. 여기서는 아기자기한 소품을 비롯한 이불, 베개, 거울, 테이블 웨어 등 집에 필요한 모든 것을 판매한다. 나는 이미 짐이 너무 무거워서 대충 둘러만 보고 나왔는데 나중에 집이 충분히 세팅되면 다시 가볼 생각이다.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아니어도 삶의 질을 높여줄 만한 소품이 많다. 오늘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 사는 것도 충분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여기까지 구매하고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뭔가를 먹고 좀 쉬기 위해 반대편 Beaugrenelle에 있는 Cojeans라는 카페에 갔다. (Beaugrenelle은 길을 사이에 두고 두 파트로 나뉜다.) 리조또와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약간의 에너지 충전을 하고 다시 자라홈으로 돌아갔다. 원래 빨래 건조대가 있으면 사려고 다시 간 거였는데, 빨래 건조대가 없었기 때문에 간 김에 지금 당장 필요한 옷걸이 몇 개(이케아 가서 더 많이 사들어야지)랑 집에 없던 머그컵 하나와 티스푼 두 개를 샀다. 이런 것들도 은근히 집에 당연히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없고, 직접 사야 하는 물건 리스트에 들어간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머그컵이 없어서 커피를 못 먹었기 때문에.

그 후에는, 옆에 있는 대형 모노프리에 가서 대걸레와 고무장갑, 행주를 샀다. (왜 굳이 여기서 샀는지 잘 모를 일이지만 뭔가 크고 좋아 보였다.) 이미 너무 지친 상태라 더 이상의 쇼핑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되지만 버스는 바로 가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으로 갔더니 오늘 시위가 있어서 버스 운행을 안 한다고 했다. 정말 너무나 프랑스적이다.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이 짐 다 짊어지고 지하철 갈아타가면서 겨우겨우 집에 왔다.

리빙포인트 2 : 무거운 전자제품을 살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 쇼핑하자! 나처럼 제일 먼저 샀다가 쇼핑 내내 청소기 끌고 다니느라 낑낑대지 말길.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 집에 와서 청소기도 돌리고 걸레질도 하고 나니 아직 더 필요한 게 몇 개가 있길래 (네버 엔딩 스토리가 이런 건가) 집 근처의 Franprix로 향했다. 물론, 저녁거리랑 먹을 것도 좀 사야 하고. 일단 제일 급하게 필요했던 건, 손빨래용 세제랑 향초를 켜기 위한 라이터(정확히 말하면 라이터는 아닌데, 그걸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딸깍 누르면 불꽃 나오는 것), 그리고 와인따개! 어제 와인 사 왔는데 오프너 없어서 못 마신 거 실화입니까? 오늘은 주말이고 고된 하루였던 만큼 반드시 와인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나만의 논리) 오프너가 꼭 필요했다. 집 근처에 총 2개의 Franprix와 Carrefour City가 있는데 이미 가 본 두 곳 말고 새로운 Franprix로 가봤다. 가보니 제일 맘에 들어서 앞으로도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리가 얼마 차이 안 나긴 하지만 그중에 제일 가깝기도 하고. 오늘 저녁에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을 냉동 파스타를 비롯해 누텔라나 빵, 햄, 요플레, 달걀 등 앞으로 먹을 식재료들을 담았더니 거의 8만 원 정도 나왔다. 확실히 집 있으니까 두고두고 먹을 것들을 살 수 있다는 게 좋다. 진짜 많이 샀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냉장고에 정리해 보면 별 게 없다는 게 장보기의 이상한 점이다. 장보기의 신비랄까?

아무튼 지금은 샤워하고 저녁 먹은 후 와인을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일은 이불 사야 되는데, 어학원 숙제도 해야 되고. 오늘 너무 에너지를 다 써서 내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내일 아니면 다음 주 주말인데 말이다. 아니, 무인양품은 파리 시내에도 많으니까 그냥 무인양품 갈까 싶기도 하고. 뭔가 해야 하는 건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는 게 슬프다. 사실 오늘도 무인양품이나 자라 홈 등에서 이불 괜찮은 거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내가 내 침대 사이즈가 뭔지도 모르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포기했다. 진짜 이케아 갔으면 어쩔 뻔했지. 정말 아찔한 멍청함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앞으로도 나의 우당탕탕 독립 적응기는 쭉 계속될 예정이다.

리빙포인트 3 : 프랑스 마트에서 초콜릿 무스가 보인다면 꼭 살 것. 진짜 먹을 때마다 너무 맛있어서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 초콜릿 무스 한통이면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다. 진한 초콜릿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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