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의파랑 Mar 15. 2019

흐린 날의 니스까지도

'파리지엔, 니스에 가다'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편인데 바다를 보고 있으면 걱정과 불안, 쓸데없이 나를 집어삼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전부 다 휩쓸려 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나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선물했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는 그 고요한 평화를 사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니스 여행은 아침부터 오후, 그리고 해가 떨어지는 모든 순간부터 어둠이 내린 밤까지 하루가 흘러가는 모든 순간의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흐린 날의 바다가 어떤지, 구름이 걷히고 날이 개는 순간의 바다는 또 어떤지, 해가 쨍한 순간의 바다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는 일이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름이 잔뜩 껴서 하늘이 온통 흐렸던 어느 날 아침, 평소 같으면 흐린 날씨에 툴툴거렸을 법도 한데 그날따라 딱 하늘의 빛깔만큼 회색 빛을 품고 있던 바다가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졌다. 비록 감탄이 터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더라도 내겐 그만큼이나 경이로운 느낌을 주었다. 구름 사이로 존재감을 뽐내던 한 줄기의 햇빛이 수면 위를 간질였고, 그 투명한 반짝임이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잔잔한 풍경이 조용히 나를 위로했다. 마치 네가 무슨 일을 겪고 있든, 나는 너를 안아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는 흐린 주말 아침,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푹신한 이불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달까? 바다는 한없이 다정했고, 나는 잠시나마 그 다정함 속에서 마음껏 유영했다. 마치 바다의 그 부드러운 빛깔이 나에게 단 하나의 의미였던 것처럼. 마치 이곳이 세상의 끝이고 나 말고는 그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그렇기에,

파리를 떠나 혼자 3박 4일간 니스에서 머물면서 파리에서만큼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바다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물론이고 다소 울적한 순간조차도 늘 바다가 있기에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해변가를 산책하다 보면 마음속의 어떤 소용돌이도 차분히 가라앉곤 했으니까. 나의 니스 여행은 그저 바다를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Attention, 도파민 주의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