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 니스에 가다'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편인데 바다를 보고 있으면 걱정과 불안, 쓸데없이 나를 집어삼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전부 다 휩쓸려 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나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선물했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는 그 고요한 평화를 사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니스 여행은 아침부터 오후, 그리고 해가 떨어지는 모든 순간부터 어둠이 내린 밤까지 하루가 흘러가는 모든 순간의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흐린 날의 바다가 어떤지, 구름이 걷히고 날이 개는 순간의 바다는 또 어떤지, 해가 쨍한 순간의 바다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는 일이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름이 잔뜩 껴서 하늘이 온통 흐렸던 어느 날 아침, 평소 같으면 흐린 날씨에 툴툴거렸을 법도 한데 그날따라 딱 하늘의 빛깔만큼 회색 빛을 품고 있던 바다가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졌다. 비록 감탄이 터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더라도 내겐 그만큼이나 경이로운 느낌을 주었다. 구름 사이로 존재감을 뽐내던 한 줄기의 햇빛이 수면 위를 간질였고, 그 투명한 반짝임이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잔잔한 풍경이 조용히 나를 위로했다. 마치 네가 무슨 일을 겪고 있든, 나는 너를 안아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는 흐린 주말 아침,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푹신한 이불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달까? 바다는 한없이 다정했고, 나는 잠시나마 그 다정함 속에서 마음껏 유영했다. 마치 바다의 그 부드러운 빛깔이 나에게 단 하나의 의미였던 것처럼. 마치 이곳이 세상의 끝이고 나 말고는 그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그렇기에,
파리를 떠나 혼자 3박 4일간 니스에서 머물면서 파리에서만큼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바다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물론이고 다소 울적한 순간조차도 늘 바다가 있기에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해변가를 산책하다 보면 마음속의 어떤 소용돌이도 차분히 가라앉곤 했으니까. 나의 니스 여행은 그저 바다를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