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무렵 라디오를 좋아하게 된 나는 특히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이라는 심야라디오를 좋아했다. 그때부터 나의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이전에 우리 집이 잘살던 때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나는 사교육을 많이 받았었고 부모님이 바라는 나의 꿈은 치과의사, 한의사, 변호사였다. 나는 엄마가 사준 부황으로 아빠 등도 떠주고 지압신발에 적힌 발에 연결된 신체부위를 외우곤 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엄마가 말기암환자가 된 이후에도 난 공부를 곧잘 했다. 나라에서 지원으로 학원을 지원해 줘서 청솔학원을 다녔는데 중1에 전교 11등을 해서 현수막에 이름이 적히기도 했다. 나는 그 무렵 옷도 잘 입고 멋쟁이였다. 그리고 절대로 내가 이혼가정인 것, 엄마가 암환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머리를 빡빡 밀어 다시 자란 머리가 짧아 그걸 가리려 비니를 쓴 엄마를 보고 눈치챈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반장도 했기에 철없이 중학생이 되어서도 반장선거에 나갔다 당시 나는 미션스쿨을 다녔다. 기독교 학교말이다. 당시에 나간 반장선거에서 나는 덜컥 반장이 되었다. 엄마는 좋아하기보다 한숨을 쉬시곤 화를 내시기도 하셨다. 그러다가 담임선생님과 통화도 하더니 난을 스승의 날에 학교에 보내셨다.
그 무렵 나는 사춘기라 짜증이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시절에는 치과의사, 한의사, 변호사 부모님이 바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자 그런 요구사항이 없었다. 꿈이 없는 나는 점점 성적이 떨어졌다. 나도 꿈이 있고 싶었다. 꿈이 있는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그런 친구들이 빛나보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무슨 직업 가지면 좋겠어?
그때 엄마의 대답은 이전과 달랐다.
네가 행복한 일. 청소부여도 네가 행복하다면 좋겠어.
그리고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니 돈을 말고 행복을 쫓아가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다가 나에게 명확한 직업을 주지 않는다고 대들었다. 그래도 엄마는 저 말만 했다 그러던 내가 꿈이 생겼다 라디오 피디라는 꿈이었다 심야라디오로 듣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을 듣다가 생긴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