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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Dec 18. 2021

펑펑 눈 오는 날, 우리 엄마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

새하얀 눈 속에서 찾는 나의 감성 어린 어릴 적의 추억의 글

글을 적을 수 있어서 참 좋은 점은,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어릴 적 나를 찾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잊고 있던 한겨울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보게 된 것이다.

시베리아 강추위가 몰아친 오늘, 오전에 열심히 미뤄둔 장보기와 볼일을 마치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겨울엔 역시 아랫목에서 몸 지지고 자야지' 하며 뜨끈한 바닥과 두툼한 이불로 온몸을 둘둘 말고 3시간을 잠들었다. 한창 자는데 두 아들 녀석들이 난리가 났다.

"눈이다!!! 와!!! 눈 온다!!! 나가자!!!!"

이 추위에 맨몸으로 나간다고? 비싸게 주고 산 하나뿐인 롱 패딩을 입고 눈 속에 뒹굴며 한가득 빨랫감을 만들어 놓을 상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다리라고~~~~~~~~~~~~~!"


이때부터 정신없이 두 아이를 위해 만발의 준비를 했다. 아무렇게나 뒹거려서 버려도 되는 두꺼운 잠바에 코로나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작아진, 심지어 올해는 똥꼬가 낄정도로 짧아진 스키복 바지에 내가 신다 버리려고 고이 베란다 창고에 쑤셔놓은 부츠까지 완전 무장을 시키고 목도리까지 둘러메주고는 내보냈다.

애들은 집 앞 놀이터에 내보내고 홀로 오전에 사둔 초코 잔뜩 들어간 빵에 아메리카노를 내려먹을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눈은 역시 안에서 밖을 볼 때가 낭만적인 거지, 뭐하러 온몸으로 '곧, 녹은 물'을 맞아야 하나?

거실에서 보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눈밭에서 뒹굴고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고....... 세상 행복해 보인다. 감상에 젖은 시간도 잠시, 현실로 돌아와 보니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헉! 저 눈을 만졌다고? 손 시린 거 아냐?"

헐래 벌떡 롱 패딩 주워 입고 당장 뛰쳐나갔다. 내 새끼 손 시려 울까 봐 맨발에 내복 바람에 롱 패딩 하나 걸치고 뛰어나갔더니,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소리 없이 흐드러져 내리고 있다.

평소와 같았던 오전에 풍경이 지금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달라져있다. 입김에 안경이 시야를 가린다. 안경을 벗고 바라보니 더 절경이다.


문득 어릴 적 겨울을 보내던 날의 내가 하나둘씩 떠오른다.


첫눈이 내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입학 전에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엄마랑 오빠랑 셋이 나갔다.  사진기가 몹시도 귀했던 때라 엄마가 자꾸만 오빠랑 나를 여기 서있어라 저기 서있어라 주문이 많았다. 우리 남매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듣는 둥 마는 둥 둘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발자국을 먼저 찍겠다며 싸웠다. 결국 그날의 사진은 정체 모를 어린이 둘이 신나게 뛰는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도 찍을걸 그랬다. 젊은 날의 엄마, 지금 나의 나이였을 우리 엄마.

지금은 내가 그 위치에 있다. 아이들에게 여기 봐라. 저기 서봐라. 정작 나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또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배정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처음 뺑뺑이로 학교를 갔던 세대였던 나는 친구들과 배정받은 학교를 확인하러 학교에 갔는데 다시 집에 가라고 하는 것이다. 눈이 엄청 이도 많이 오던 겨울날, 친구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그때 때마침 라디오에서 뉴스로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던 엄마들이 교육청에서 시위를 하고 결국 다시 배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친구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상가상 말 그대로 눈 위에 다시 서리가 내려 쌓인다는 말처럼 그날따라 눈은 왜 그렇게도 오는 것인지. 기사님께서 차가 막혀 못 가니 걸어가라는 것이다. 같은 학교 배정받았다고 좋아했던 단짝 친구와 나는 교복차림으로 그 눈을 다 뚫고 걸어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액체들을 연신 흘러내리고 친구와 나는 씩씩 거리며 집까지 걸어갔다. 결국 우린 같은 학교를 갔다. 지나고 나니 웃을 일이지만 16년 평생 가장 최악의 날이었으리라.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용인에 조금은 외진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교통이 편하고 고등학교 근처에 살았던 내가 도시개발 중인 시골 동네에 이사 왔다며 온통 불만을 토했다. 당시 고2였던 나를 걱정하신 부모님은 기숙사도 얻어주고 학교 등하교도 매번 차로 시켜주셨다. 가끔 아빠가 바쁘신 날이면 혼자서 집에 왔는데 하필 그날 눈이 정말 하늘이 뚫린 것처럼 펑펑 쏟아졌다. 결국 마을버스는 멈춰 섰고 기사님께서는 더 이상 안쪽 동네는 못 간다며 걸어가라고 하셨다. 나는 눈물이 났다. 그땐 멀리 이사 온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할 때라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는 왜 시골에 이사 왔냐며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집에 가냐고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부려댔다. 정말 그때의 마음은 그랬다. 길도 잘 모르는데 막막하고 춥고 돈도 없고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그때였다.

"학생, 혹시 어디 살아요? 나랑 같이 갈래요?"

우리 엄마의 연배에 인자하게 생긴 아주머니는 다행히 같은 아파트를 살고 계신 분이었다. 냉큼 아줌마를 따라나섰다. 아주머니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셨다. 이상하게 나는 아주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술술 해댔다. 이사 온 게 싫다고도 하고 부모님이 마음대로 이사오셔서 화났다고도 했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 나의 마음을 잘 달래주셨다.

"부모님 마음대로 이사 오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넓고 깨끗한 새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살게 해주고 싶었을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차가운 마음이 새하얀 눈처럼 녹아내렸다.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그때 당시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은 아파트에 제일 넓은 평수의 집에 살아서 별생각 없이 툭툭, 나도 큰방에서 침대 놓고 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처음 이사 오고 엄마는 나에게 제일 비싼 가구점에서 가장 좋은 침대를 사주셨다. 혹시 부모님도 정말 그런 마음이셨을까? 갑자기 눈과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눈보라 싸대기를 맞으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딱 그 타이밍에 우리 엄마가 나타났다. 저기 멀리서 내 잠바와 목도리를 들고 눈보라를 헤치며 오고 계셨다. 반가움과 미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엄마는 급히 나에게 잠바를 입혀주고 목도리를 둘러주더니 급기야 신던 신발을 바꿔 신자며 막무가내였다. 됐다고 버티는 딸과 자꾸만 발 시리다고 재촉하는 엄마, 결국 엄마의 승리였다. 엄마는 태연하게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서 끼어서 셋 이수다를 떨며 집까지 갔다.


그날의 기억이  갑자기  걸까? 시작은 눈이었는데 결국 엄마로 이어지는 마법의 . 눈이 오는 , 아이였을 적엔 그저 나가지 못해 안달이고 뛰어노는 일에 바빠 엄마 뒷전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눈이 오면 아이들 걱정부터 한다. 나간다고 하면 어쩌지? 감기 걸리면? 다치면 어떡하지?

우리 엄마도 나를 키울 때 그랬을까? 다 키우고 난 지금도 그렇다. 어제 밖에 많이 춥다고 나가지 말라고 전화하시는 엄마를 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엄마, 이제  걱정  그만해~! " 하면 

"자식은 평생 걱정 꺼리다~ "하는 나의 엄마.

" 낳지 ~ 평생 A/S 해야 ~ " 하는 우리 엄마.

내일은 엄마한테 고맙다고 문자라도 하나 보내야겠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밥은 먹었냐고 물어볼 우리엄마지만 꼭 그냥 이유없이 전부 다- 고맙다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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